유화정책과 영국의 안보관? Le monde

유화정책과 영국의 안보관?

1930년대 영국 유화정책의 주체들의 안보관은 제1차 세계대전의 영향을 받았다. 

우선, “영국인의 정신 속에서 전쟁이 궁극의 악으로 등장했다.” 

대륙파병(continental commitment)에 대한 혐오감이 강해졌다. 제1차 세계대전의 대륙파병은 감당할 수 없는 대가를 치른 것으로 드러났다. 전후 영국 엘리트들은 “절대 다시는” "never again", 즉 자국이 대륙전쟁에 절대로 다시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대륙파병에 대한 혐오가 강해지면서, 동시에 전후의 영국 엘리트들은 영국의 힘과 미래는 해외제국에 달렸다는 믿음이 강해졌다. 이는 영국 안보에 대한 전통적인 논쟁, 즉 안보를 위해 중요한 것은 유럽대륙인가, 해외제국인가의 논쟁에 영향을 주었다. 대륙에 대한 관심이 퇴조하면서, 해외제국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더 강조된 것이다. 유화정책의 전제는, 1904년 이전의 영국 대전략의 그것과 동일했다 : 영국 본토의 안보는 대륙의 경쟁국들의 갈등에 개입하지 않는 것으로 가장 잘 보장될 것이다.

역사가 하워드는 "1930년대에 영국을 통치한 정부 관료들은 다른 전쟁에 개입하지 않기 위해서라면 어떤 대가로 치를 준비가 되었다고 믿었던 사람들이었다."고 주장했다. 

또 한변의 대륙 파병을 피하는 것이 영국 안보를 위해 중요하다고 그들은 믿었다.  

- Charles Kupchan, The Vulnerability of Empire, 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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