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임벌린 유화정책과 소련? Le monde

왜 소련과의 동맹은 현실성이 없었는가?


체임벌린의 유화정책에 대한 대안으로 소련과의 동맹이 주장되기도 한다. 실제로 1930년대 말에 처칠은 체임벌린 정부가 소련과 대동맹 “Grand Alliance” 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현실적인 정책이 아니었다. 우선, 소련은 독일과 국경을 접하지 않았다. 1939년 영불의 크렘린과의 동맹협상이 실패한 것에는, 폴란드와 루마니아 같은 동유럽 국가들이 베를린만큼이나 모스크바를 두려워했고, 소련군이 독일과 싸우기 위해서 자국 영토를 통과하는 것을 허용하기를 주저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1938-1939년에 영국 지도자들은 붉은 군대 장교단에 대한 스탈린의 숙청이 소련의 군사력을 저하시켰다는 점을 알았다. 마지막으로 런던은 정확하게, 소련이 영국의 이익에 반하는 정책을 취하고 있음을 알았다. 이후 공개된 소련 기록에 따르면, 런던의 의심을 확인하고 있고, 런던과 파리와 동맹하기 보다, 스탈린은 독일 견제의 부담을 영국과 프랑스에 전가시키려 했다. 역사가 로버트 터커는 스탈린 전략이 독일과 서양 동맹국의 전쟁을 조장하여, 그것을 소련 세력의 서진을 위한 기회로 삼으려 했다고 해석했다. 이런 관점에서 19393월의 폴란드 안보에 대한 런던의 보장은 스탈린의 숙원의 성취였다, 즉 독일이 영국,프랑스와 전쟁하게 만들어서 소련이 동에서 서로 확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는 바람의 현실화였던 것이다. 이를 통해서 소련은 폴란드, 발트해 국가,루마니아를 희생시켜서 영토를 확장했고, 서양과 독일이 서로 전쟁을 통해 힘을 소모할 동안 소련의 상대적 힘이 증가하는 것을 기대할 수 있었다.


Christopher Layne, “Security Studies and the Use of History”, 422-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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