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화정책과 영국경제?
히틀러 위협의 증가에 따라 영국은 균형행동에 나섰지만, 외부 균형 즉 반-독일 동맹구축은 국제정치 상황에서 여의치 않았고, 따라서 내부 균형행동, 즉 군비증강 계획이 대안이었다. 그럼에도 군비증강도 여의치 않았다.
1930년대 동안 영국경제는 국제무역을 지향했다. 1931년 거국내각인 램지 맥도널드의 국민정부 National Government의 탄생은 금융위기의 결과였고. 정부는 파운드의 신뢰회복과 영국경제 회복을 목표로 정했다. 평시에 영국은 자국민들을 먹이고, 공산품 산업을 위한 원료 확보를 위해 수입에 의존했다. 그 결과, 영국은 공산품 수출을 통해 수입 자금을 마련했다. 재무장은 수입에 대한 영국의 의존을 증가시킬 것이었다. 특히 기계 공구류와 원료 수입.
실제로 페든에 따르면, 1930년대 영국의 무기생산 비용의 25-30%는 원료 수입이 차지했다. 재무장이 시작되면서 영국 정책결정자들은 경제 딜레마에 빠졌다. 재무장과 수출 산업이 원료,숙련 노동,공장과 같은 소중한 생산 요소를 두고 직접 경쟁했다. 단순히 말하자면, 재무장의 속도가 증가하면, 영국의 수출량이 감소할 것이었다. 이렇게 수출을 통한 벌이가 감소하면, 영국은 재무장 자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었다.
- Christopher Layne, “Security Studies and the Use of History”, 406-407.
- 1930년대 영국 재무장계획이 직면한 어려움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서양 제재 상황에서 러시아 군수산업이 직면한 것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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