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부상과 영국의 동맹형성? Le monde

히틀러의 부상과 영국의 동맹형성?

1933년 이후 히틀러의 위협이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영국은 균형, 즉 반-독일 동맹형성을 통해 억지,견제에 나설 수 있었다. 우선 영국에게는 확고한 동맹이 한 나라있었다: 프랑스. 런던에게 프랑스는 중요한 군사 동반자였다. 왜냐하면 프랑스 육군이 독일이 벨기에와 프랑스 북부를 차지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은 독일이 영국을 공중공격하는 발판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런던은 프랑스와의 동맹을 애증의 심정으로 인식했다. 왜냐하면, 파리의 중유럽 동맹국들과 베르사유의 현상유지를 파리가 집착했기 때문이었다. [런던은 파리의 중유럽과의 동맹 때문에 자신이 독일과의 전쟁에 말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다음으로 이탈리아,소련,미국이 영국의 잠정적 동맹대상국이었다. 1935년 아비시니아 침략 이전에 이탈리아는 반-독일의 스트레자 전선을 통해서 런던,파리와 동맹관계였고, 로마는 베를린이 서유럽과 오스트리아의 현상유지에 도전하는 것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아비시니아 위기라는 재앙 이후 이탈리아는 영국의 잠재적 적국이 되었다. 

소련은 벨기에와 프랑스 북부 방어에 도움이 되지 않았고, 독일 공군의 공격으로부터 영국을 지켜줄 수 없었다. 모스크바는 중유럽으로의 독일 팽창을 저지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뿐이었다. 영국은 크렘린을 잠재적 동맹으로 간주하려 하지 않았다. 1930년대 동안 영국 정책결정자들은 소련과의 동맹의 타당성과 유용성을 의심했다. 

마지막으로, 1930년대에 영국은 자신이 독일 혹은 일본과 전쟁을 할 경우에, 미국이 영국을 위해 군사개입할 것으로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Christopher Layne, “Security Studies and the Use of History”, 405-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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