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체임벌린을 고발한 카토의 죄인 출간. Le monde

1940년, 체임벌린을 고발한 카토의 죄인 출간.

유화정책의 연구사의 출발은 1940년의 카토라는 필명의 죄인 출간이었다. Cato’s Guilty Men in 1940

<죄인>은 체임벌린과 유화론자들에게 1940년 여름에 영국이 직면한 위기의 책임을 물었다. 그들은 범죄적인 새로운 나치 전쟁세력의 목적에 둔감했고, 히틀러의 의도를 일관되게 오독했고, 평화 유지라는 헛된 희망 속에서 그의 늘어가는 요구에 대해 일방적인 양보를 제공했고, 영국의 재무장을 소홀히 해서, 위대한 제국과 최고의 군대와 자유를 위한 안보를 국가파괴의 벼랑까지 몰고 갔다는 비난이었다. 

카토의 <죄인>은 1930년대 영국의 힘,위대함,능력을 당연시했다. 즉 1930년대 영국의 정책결정자들은 히틀러와의 협력 보다는 저항과 대결이라는 대안적인 더 나은 정책을 채택할 자유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할 수 있는 비전,지력,경쟁력을 가지지 못했다. 그들의 유죄의 본질에는 그들이 다르게 행동할 수 있었고, 그렇게 해야만 했다는 사실이 존재했다.

-참고
P. Finney, ‘The Romance of Decline: The Historiography of Appeasement and British National Identity,’ Electronic Journal of International History, (2000),

- 1960년대 이후 대두된 유화정책의 수정주의는 유화론자들의 자유의지의 한계를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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