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유화정책과 극동의 일본? Le monde

영국의 유화정책과 극동의 일본?

유화정책에 대한 비판 중 하나는 왜 영국이 조기에 독일에 대한 예방전쟁을 하지 못했는지에 관련있다. preventive use of force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 육군의 예산이 체계적으로 삭감된 것을 고려할 때, 독일과의 대치가 영국의 제국의 위험에 처하게 만들것이란 공포가 존재했다. 

또한 세계사적 시각에서 볼때, 독일의 위협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1933,1934년의 영국 군사전략 기획자의 관심을 끈 것은 주로 일본의 국제연맹 탈퇴, 일본의 만주 침략이었고, 그들은 일본이 홍콩,싱가포르, 페르시아의 유전, 심지어 수에즈 운하를 공격하지 않을지 우려했다. 뿐만아니라 유럽에서 독일과 전쟁을 하면, 극동에서의 일본의 도발을 부추길 수도 있었다. 영국 외무부 극동국장 오드 C.W. Orde 는 국방 소요위  the Defence Requirements Committee 에서 "나는 우리가 일본의 공격 가능성에 대해 항상 신경써야 한다고 생각하며, 만약 우리가 그것에 대해 철저히 대비하지 않는다면, 다른 세력과 갈등을 벌일 동안 우리는 일본과도 전쟁을 하거나 혹은 일본의 심각한 위협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영국은 보다 임박한 일본의 위협에 집중하고, 독일의 장기적 위협은 후에 대처하는 것이 의미가 있었다.

- Ripsman, N., & Levy, J. (2012). British Grand Strategy and the Rise of Germany, 1933–1936. 185.

- 영국의 유화정책을 영국과 독일간의 양국사적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당시 영국은 제국이었고, 채스판은 거대했다. 영국이 독일에게 집중하면 일본에게 당하고, 일본에게 집중하면, 독일과 이탈리아에게 당할 수 있었다. 
영국의 유화정책은 대-독일 견제정책을 넘어서는 세계정책의 일환이었다. 

히틀러 집권 이전부터 일본은 만주를 침략하고 있었고, 일본군의 총구가 홍콩과 싱가포르의 영국 영향권에 대한 위협을 가할 수 있었다. 실제로 이후에 그랬지만, 영국이 유럽에서 전쟁에 휘말리게 되는 것은 일본이 아시아에서 제국의 확장하기 위한 호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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