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임벌린의 유화정책과 영국대중? Le monde

체임벌린의 유화정책과 영국대중?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의 주권자이다. 국민의 여론형성을 통해서 정부의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하지만, 국민이 틀린 생각을 가질 경우는 어떻게 할 것인가?

유화정책의 역사에서 영국 대중은 다음의 역할을 했다. 영국 대중의 제1차 세계대전의 경험에서 진저리쳤으며, 매우 평화적이었고, 또 한번의 전쟁을 치를 의지가 없었다. 램지 맥도널드가 주도한 거국내각인 국민정부 “National Government”는 영국의 재무장 정책과 전쟁이 초래할 정치적 파장을 우려했다. 1933년 12월 영국 외무장관 사이먼이 부하 차관인 밴시타트에게, "만약 상황이 지금처럼 나쁘게 진행된다면 우리는 재무장해야 할 것이다. 엄청난 돈이 들 것이고, 야당이 정부를 공격하는 새로운 빌미가 될 것이다." 고 말했다. 대중은 국제위기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군축회담에 큰 관심을 보였다. 사이먼에 따르면, "군축협정이라는 부르는 국제협정에 도달하지 못하면, 대중의 시야에서 영국 정부는 신뢰를 잃게 될 것이며, 그것은 심각한 것이 될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대중의 평화주의를 위해서 영국의 전략적 우선순위를 희생하고 싶지 않았음에도, 국내여론은 전쟁 없이 독일세력의 성장을 억제한다는 정책의 동기가 되었고, 그 정책은 전혀 실현가능성이 없었다.  

- Ripsman, N., & Levy, J. (2012). British Grand Strategy and the Rise of Germany, 1933–1936. 184.

- 1930년대 영국 국민은 정부의 유화정책을 지지하고, 심지어 추진동력을 제공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전쟁 책임을 두고는 네빌 체임벌린만 비판한다. 체임벌린 입장에서는 억울한 측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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