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스벨트와 체임벌린 Le monde

루스벨트와 체임벌린

1938년의 유화정책의 해였다.

3월 11일
루스벨트가 프랑스대사에게
그는 체임벌린을 런던 금융가 사람으로 묘사하면서, 독재자와 사업 거래를 하고자 희망하면서 프랑스를 배신하기로 결정한 사람으로 규정했다. 
Bouverie, Appeasement- Chamberlain, Hitler, Churchill, 248.

1938년 3월에 루스벨트는 체임벌린에 대해 이런 비유를 들었다. "몇몇 사람이 제게 이렇게 말합디다.  만약 경찰총장이 조폭 두목과 협상해서, 그 협상 결과가 더 이상의 도둑질이 없는 것이라면, 그 경찰총장은 위대한 사람으로 불려 마땅합니다. 하지만, 만약 조폭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경찰총장이 감옥에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생각에, 어떤 사람들은 요행에 너무 많은 기대를 거는 것 같습니다." 

David Reynolds , From Munich to Pearl Harbor: Roosevelt's America and the Origins of the Second World War (American Ways Series),  Ivan R. Dee (August 5, 2002),38-39.
 
체임벌린은 미국을 불신했다. "미국놈?들로부터는 말 빼고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것이 최고이자 최선이다."

이후의 전쟁에서 영미 동맹이 중요했던 것을 고려하면, 체임벌린의 독일 유화정책은 미국을 영국과 멀어지게 만들 위험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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