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가 유화정책을 결심한 이유는?" Le monde

"프랑스가 유화정책을 결심한 이유는?"

1938년 여름에 프랑스 정보국은 독일군이 서부에서 프랑스의 공세를 방어하면서도 동시에 동부에서 체코슬로바키아를 격파할 능력이 있다고 추정했다. 이 추정은 독일 군사력과 독불 국경의 요새의 힘을 과도평가했다. 하지만 프랑스의 오판은 역사가들에 의해 역시 과장된 것이다.

왜 그럴까? 프랑스군의 무장은 열악했고, 독일에 대한 대규모 공격 계획 자체가 전혀 없었다. 더 중요한 것은 프랑스 공군은 붕괴상태였고, 단지 50대의 현대 전투기를 보유했을 뿐이었다. 독일이 프랑스와 체코슬로바키아에 대해 엄청난 전력상의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점에 대한 자각이 모든 프랑스의 전략적 추정을 지배했다. 

심각한 경제적,재정적 약점도 존재했다. 1936년 이래 프랑 화폐가 3번 절하되었음에도, 산업 생산이 회복되지 않았고, 국가 수입은 하락했다. 더 나쁜 것은 자본투자의 유출로 프랑스 은행의 금보유고가 고갈되었다는 점이다. 9월의 뮌헨 위기 동안 프랑스 재정은 붕괴 위기였다. 

따라서 프랑스는 군사,산업,재정이란 관점에서 주요 강대국과 전쟁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 출처

Robert Boyce,‎ Joseph A. Maiolo (eds.), The Origins of World War Two, 102.



덧글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