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전쟁을 미일관계로만 설명할 수 없다." Le monde



태평양전쟁의 기원을 일본의 진주만 기습을 중심으로 미일관계의 차원에서 해석하는 것이 대세이다. 하지만 미일관계로만 이 역사를 해석하는 것은 분명한 한계가 있다. 

이런 류의 해석은 미일의 충돌이 1941년에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열중했던 더 넓은 세계적 위기의 단지 일부였다는 사실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역사가 월도 하인리히는 1941년의 태평양에서의 사건들은 미국을 위한 위기의 맥락에서 해석되어야 하지만, 당시 미국의 주요 관심사는 히틀러의 유럽 정복으로 인한 유럽의 미래에 대한 불안이었다고 강조했다. 태평양에서의 미국의 행동은 유럽전쟁에서의 잠재적인 폭넓은 결과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연계되었고. 일본이 독일,이탈리아와 동맹이었다는 점이 고려되었다. 루스벨트 정부의 정책은 따라서 삼국동맹의 일원인 일본이 아시아에서 반-영국 전쟁을 시작하는 것을 막는 것이었고, 일본의 추가 침략을 막기 위해서 미국이 군사적 억지력과 외교력을 행사한 것이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루스벨트 대통령이 정교하게 시작한 1941년 7월의 일본에 대한 석유 수출금지는 일본의 남진을 막기 위해서 였을 뿐만아니라, 일본의 소련 공격도 막기 위한 것이었다. 대통령은 일본의 소련 공격을 우려했고, 독일이 이미 소련을 공격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의 북진은 소련을 붕괴시킬 것이고, 그 결과 영국 홀로 독일과 싸우게 되는 벼랑끝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막아야 했다. 러시아에 대한 걱정이 또한 1941년에 왜 루스벨트가 1941년 11월에 인도차이나를 두고 일본과의 타협 가능성에 부정적이었는지를 설명해 준다. 

1941년 루스벨트의 머리 속에서 유럽전쟁과 아시아 전쟁은 하나였고, 유럽이 우선이고, 아시아는 부차적이라는 정책의 순위 서열 속에서 미국의 행동이 결정되었다고 할 수 있다. 


-참고

Robert Boyce,‎ Joseph A. Maiolo (eds.), The Origins of World War Two, 58.



덧글

  • 2022/02/20 09:3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22/02/20 13:31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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