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과거가 아니라 예측을 위한 학문이다?" Le monde

"역사는 과거가 아니라 예측을 위한 학문이다?"

마틴 반 크레벨드, <<예측의 역사>>란 책 제목을 보고 놀랐다. 

나는 역사가 과거를 이해하는 것 보다는 미래를 예측하기 위한 학문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주장은 서양역사의 아버지 투키디데스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왜 펠로폰네소스 전쟁 역사를 기록하려 했을까?

투키디데스는 왜 과거를 공부해야 한다고 했을까? 그것은 과거 사실을 있는 그대로 알려고 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아테네인인 투키디데스는 자신이 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가 미래의 정책결정자들이 시간의 끊임없는 트랙 (그는 이 트랙이 원처럼 돌고 돈다고 보았다) 위에서 다시금 비슷한 선택의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 더 훌륭하게 행동할 수 있도록 무장시켜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투키디데스는

<<... 과거에 발생했고 또 (인간의 본성이 변하지 않는다면) 미래의 언젠가 과거와 똑같은 방식으로 반복하여 발생할 사건들을 명확하게 이해하기를 원하는 사람들>> Thucydides, History of the Peloponnesian Wars, Trans. Rex Warner (London. Penguin Books, 1954),p.24.

을 위해서 전쟁사를 집필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주장이 암묵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것은 이런 것이다. 즉 아무리 먼 과거라고 할지라도 과거로부터 얻어진 대리경험(vicarious experience)이 현재에 하나의 지침을 제시해 줌으로써 역사는 단순히 그 자체로서의 보상 이상의 그 무엇이 된다는 것이다. 지식은 지혜를 수반하지만 무지는 문제를 야기한다.  1)

1) 리처드 노이스타트,어니스티 메이, 역사활용의 기술, 415-416.

우리 시대 역사학의 지상 과제는 역사를 과거로부터 해방시키는 일이다. 

이는 이른바 역사활용, 즉 응용역사학의 과제라 할 수 있는데,

가령, 헨리 키신저의 <<회복된 세계>>에서의 빈 체제 역사 연구가 그 예라 할 수 있다. 빈 체제 역사 연구가 미래인 1970년대의 미소 데탕트와 미중화해를 두 축으로 한 탈냉전 세계질서의 청사진이 되었다는 것이다. 

키신저는 과거를 통해 미래를 보았다. 

응용역사학, 즉 역사활용의 기술이 중요해 보이는 지금, 한국의 역사란 무엇인가 논의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주문을 외는 수준에 머물고 있는 현실이 유감이다. 

카가 역사란 무엇인가를 저술한 1961년 이후 발전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ㅠㅠ

덧글

  • deokbusin 2022/02/24 12:32 # 삭제 답글

    이런 말을 하긴 좀 그렇지만, 한국사회 주류적인 분위기 자체가 역사와 철학을 공부하는 것을 돈도 안되는 쓰레기짓으로 규정된 판이라, 지금 시점에서는 어찌저찌 학과가 유지되는 것만으로도 기적에 가깝습니다.

    제가 성균관대에서 중국철학을 공부하던 1988~97년 사이는 한국사회가 그래도 활기가 넘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가득찬 시기였는데도 사학과와 철학과를 간다고 하면 그걸로 먹고 사냐고 비아냥당하는 판이었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역사가 미래를 예상하는 학문이라고 하면 아예 점집 차리라고 멸시조의 핀잔을 듣습니다.

    한국 역사학계가 카의 말을 붙잡고 늘어지는 것은 결국 현 위치라도 지키기 위해서 가장 유용한 도구가 카의 말이기 때문입니다.
  • deokbusin 2022/02/24 12:50 # 삭제 답글

    게다가 논문 수량으로 업적 평가를 하는 학계 분위기에서는 과거를 파고드는 미시적 연구가 역사연구의 주류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순수한 사학과 출신자가 정치, 외교, 행정, 경제, 사회 방면 등으로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외도, 사도로 취급당합니다. 덤으로 이미 관련 분야들이 응용역사학적 글들을 내고 있는데, 하필이면 이들 분야는 한국사회에서는 주류적 입장이다보니 사학계로서는 쪼그라들 수 밖에요.

    카의 발언에 집착하는 한국 사학계의 분위기는 결국 역사철학의 기반 부족이지만, 어쩌겠습니까. 역사학과 같이 일해야 할 철학들까지 비주류, 외도, 사도로 취급당하여 같이 쪼그라드는데 말입니다.

    덤으로, 현대한국과 전통한국은 사상적, 경제적, 정치적, 법률적 등 전체 사회의 기반과 분위기가 완전히 변해 버렸습니다. 즉, 과거와 현재가 거의 완전히 단절당한 상황인지라 과거는 현재에 의해서 완전히 쓰레기 취급당하고 있지요. 즉, 과거에서 현재와 미래를 위한 조언을 구해보는 것 자체가 소득없는 짓 취급이기 때문에
  • deokbusin 2022/02/24 13:01 # 삭제

    더더욱 과거의 영광과 향수가 남긴 잔재를 서양적 도구를 써서 쫓는다는게, 현재 한국의 동양철학과와 동양사학계에 남은 자존심의 끄트머리가 되어 버렸습니다. 참 서글픈 일이죠. 식민지배의 악영향이라고 할까나요.

    문제는 한국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도 과거와 현재가 단절되다시피 하다 보니 전통적 사고와 서양적 사고가 뒤죽박죽이 되면서 기괴한 모습을 국제 정치에 노출한다는 코메디를 노출한다는 것이죠. 중국 전랑외교가 전통적 조공체제를 현대에 실현해보겠다고 나서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전통적 유교의 우아하고 윤리적 언어가 아니라 제국주의적 침탈을 당하던 시기의 서양이 쓰는 거칠고 조야한 언어가 지금도 통용된다고 믿고서 그대로 되풀이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 deokbusin 2022/02/24 13:03 # 삭제 답글

    어쨋든 한국에서 철학과 역사를 연구한다는 것은 인생의 끝을 굶어 죽을 각오로 살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지금은 시한부 자활근로로 입에 풀칠하고 있지요.
  • 파리13구 2022/02/24 16:56 #

    답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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