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군부와 35년의 프랑스-소련 원조조약? Le monde


1935년 3월 5일의 프랑스-소련 상호원조 조약은 히틀러의 독일을 양국이 서쪽과 동쪽에서 견제하자는 구상의 산물이었다. 독일을 동과 서에서 포위하자는 것이다. 

조약은 프랑스 외무성의 작품이었지만, 프랑스 군부는 조약에 회의적이었다. 군부는 조약이 히틀러의 동쪽 인접국가들과의 프랑스의 방위협정을 복잡하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1935년 5월에 체코슬로바키아가 소련과 상호원조조약을 체결했지만, 체코인들이 독일 저지하기 위해서 붉은 군대를 초대할 지 의문이었고, 심지어 프라하가 그것을 원한다고 하더라도 소련군대가 이 나라에 올 수 있는지 회의적이었다. 왜냐하면 소련은 체코슬로바키아 혹은 독일과 국경을 접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소련군이 히틀러에 맞서 체코슬로바키아 혹은 프랑스와 군사협력을 하기 위해서는 붉은 군대가 폴란드 혹은 루마니아를 통과해야 했다.

폴란드,루마니아가 뜨거운 감자였다. 두 나라는 소련과 국경을 접했다. 당시 폴란드는 독일 보다 소련을 더 두려워했는데,  독일과는 1934년 1월에 불가침조약을 체결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프랑스 참모본부는 "1921년의 우리와 폴란드의 군사동맹은 러시아와의 군사동맹으로 모순이 되었다. 우리는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폴란드와 스탈린의 소련 사이에서 선택을 하지 못한 프랑스는 독일 침략의 빌미를 제공했고, 동유럽의 핵심 동맹국들과 멀어졌다. 또한 스탈린 전체주의 체제와 손을 잡은 프랑스는 프랑스의 동맹국인 영국 반공주의 보수파에게 경종을 울렸다. 

이상의 이유로, 프랑스 참모본부는 프랑스-소련 협정을 싫어했지만, 그것을 억지로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 Sean McMeekin,Stalin’s war,  4장, 주13. 



덧글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