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버마 전역이 난관에 직면한 것은 장개석과 스틸웰의 갈등도 있었지만, 영국의 식민통치로 인한 버마인들의 반발도 문제였다. 반대로 일본 제국은 버마인의 반식민주의를 이용할 수 있었다.
버마에서는 2천만 인구 가운데 약 100만이 인도인이었다. 버마사람들은 영국인들에 의해 하급 사무원, 경찰, 트럭 운전사, 그리고 철도 노동자 및 엔지니어로 고용된 인도인들을 증오했다. 전쟁 동안 인도인들은 대규모로 도망을 쳤는데, 이 때문에 모든 곳에서 마비 현상이 야기되었다. 버마인들은 연합군의 대의를 뒤따르는 보조역보다는 일본에 동정적인 제5열 분자로 더 유명했다.
- 레이 황, 장제스 일기를 읽다, 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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