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미일협상과 장개석?
결국 진주만 기습이란 비극으로 끝난 1941년 미국과 일본의 협상은 두 나라만의 문제가 절대 아니었다. 이는 국제적 시각에서 해석해야 한다.
가령, 장개석은 이렇게 대응했다.
11월 24일(충칭 시간)에 그는 미국의 일본에 대한 봉쇄가 곧 완화될 것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는 주미대사 후스와 그의 특사 쑹쯔원을 통해 워싱턴에서 일련의 호소와 항의를 시작했다. 당시 장제스는 또한 처칠과 지속적인 접촉을 유지하고 있었다. (처칠도 장개석 처럼 미일 협상의 결렬을 원했다.)
그는 처칠에게 영국의 이익을 위해서 싱가포르 주둔 영국 공군을 통해 중국을 지원할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레이 황, 장제스 일기를 읽다, 242.
결국 진주만 기습이란 비극으로 끝난 1941년 미국과 일본의 협상은 두 나라만의 문제가 절대 아니었다. 이는 국제적 시각에서 해석해야 한다.
가령, 장개석은 이렇게 대응했다.
11월 24일(충칭 시간)에 그는 미국의 일본에 대한 봉쇄가 곧 완화될 것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는 주미대사 후스와 그의 특사 쑹쯔원을 통해 워싱턴에서 일련의 호소와 항의를 시작했다. 당시 장제스는 또한 처칠과 지속적인 접촉을 유지하고 있었다. (처칠도 장개석 처럼 미일 협상의 결렬을 원했다.)
그는 처칠에게 영국의 이익을 위해서 싱가포르 주둔 영국 공군을 통해 중국을 지원할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레이 황, 장제스 일기를 읽다, 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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