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개석, 아들 장징궈를 대하는 자세? Le monde

장개석, 아들 장징궈를 대하는 자세?

혁명가에게 부자관계란 무엇인가? 

장제스와 장징궈

1941년 12월에 만주사변의 충격파 속에서 장개석은 공직에서 사퇴했다. 이는 국민당의 통합을 위해서였다.

그 즈음에 송경령이 상하이에서 체포한 폴란드 공산주의자 석방을 조건으로 아들 장징궈를 모스크바에서 귀국시키는 제안을 해왔다. 당시 21세의 장징궈는 소련에 충성했고, 레닌그라드의 붉은군대 군사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송미령은 의붓아들 귀국을 위한 거래를 수용할 태세였다.

장개석은 부자가 떨어져 살았던 6년 동안 아들을 향한 감정이 누그러져 있었다. 게다가 아버지로서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심한 자책감에 빠져 있었다. 그는 일기장에 “징궈가 매우 그립다. 나는 줄곧 그애를 잘 보살피지 못했기에 좋은 아버지가 아니다.”라고 썼다. 나중에 그는 반성하며 말했다. “나는 아이들을 어떻게 다정하게 대하는지 모른다. 나를 이를 깊게 뉘우친다. 하지만 장제스는 “내 아들을 위해 국가의 이익을 희생할 가치가 없기” 때문에 공산당 스파이와의 교환 대신 아들이 소련에 남도록 결정했다. 이 문제를 두고 장제스는 전형적인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사람은 “자손 때문이 아니라”  "덕행과 업적으로 기억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출처-

조너선 펜비, 장제스 평전 , 262.

장개석 뿐만아니라 스탈린과 모택동도 아들에 대한 태도는 단호했고 냉정했다.

이는 지지자의 입장에서 보면 공과 사를 구분하는 고위공직자의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지만, 반대파의 입장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차가운 피를 가진 인간 백정?의 면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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