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중국침략과 식량문제?
1931년 이후 일본은 왜 중국을 침략했을까? 자원착취와 식량수탈이 목적이었다고 가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만주와 화북 지배로 일본 본토의 살림살이가 나아졌을까?
영토확장으로 인해서, 일본의 식량부족 사태는 오히려 더욱 심각해졌다. 침략의 결과로, 일본은 식량 수입에 의존하는 1억명의 인구를 추가로 먹여야 하는 책임을 떠안게 되었다.
중일전쟁의 여파로, 국민당군은 식량 잉여 생산지역에 주둔했지만, 일본 본토, 만주,화북, 양쯔강 하류, 광둥 지방, 우한은 모두 식량 수입지역이었다. 이미 1939년부터 화북의 식량부족으로 일본은 식량을 수입했다. 이는 일제가 의도한 것과 정반대였다. 그 해, 일본은 호주로부터 쌀 600만 석을 수입했다.
1941년, 일본의 배급은 하루의 곡물 330 그램으로 줄었다.
참고-
Hans van de Ven,China at War, 130.
일본은 동남아 자원 수송에서도 유사한 문제를 드러냈다.
전쟁 자원이 부족했던 일본은 동남아를 지배해야 했다. 하지만 지배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동남아의 자원을 전시 상황에서 일본으로 수송하는 문제가 남았다. 이 문제는 거의 무시되었다.
해상 수송로 보호를 위해서 일본의 서태평양 섬들, 특히 미크로네시아의 섬들을 방어해야 했지만, 요새화는 진전되지 않았고, 항공 전력도 부족했다.
동남아의 석유 및 다른 자원을 일본 본토로 수송할 선박도, 그것을 호송할 해군력도 일본은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았다. 함대결전에만 집중한 일본 해군은 사활적인 해상 수송망 보호를 경시했던 것이다. 마한의 가르침에 충실했던 일본 해군에게, 수송망 파괴는 부차적 작전이었다. 전쟁 이전에, 해군 군령부와 연합함대에서 호송작전을 담당한 참모장교는 없었다. 말하자면 일본은 현대전의 현실을 무시했다.
Sadao Asada, From Mahan to Pearl Harbor: The Imperial Japanese Navy and the United States, 266.
즉 말하자면, 자원을 차지할 생각에 집중해서, 그것을 어떻게 일본 본토로 운반하는 문제를 고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덧글
2022/01/05 09:05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2022/01/05 09:08 #
비공개 답글입니다.하고 일각의 주장마냥 만주고토 수복을 한다면 그 지역민들을 고스란히 대한민국 국민으로 들여와야 한답니다.
북한 식량문제, 시민권 문제도 골때릴텐데 만주(심지어 대마도까지…) 지배해야 한다면 할 말이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