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일본군 참모본부의 소련 인식,
1937년 중일전쟁을 앞둔 상황에서도 일본군 지도부의 사고를 사로잡은 것은 소련의 위협이었다. 같은 해 일본군 참모본부는 소련이 극동에 16개 사단과 3개의 기계화 사단, 총 29만의 병력과 항공기 1200대, 30척의 잠수함을 배치했다고 파악했다. 반면 만주의 일본 관동군은 병력이 8만이었고, 항공기는 239대 뿐이었다. 1936년 일본은 소련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군비증강 계획을 실시했고, 1940년 이후로 예상되는 세계전쟁을 준비했다. 일본이 항공기,전차,중포,함정 건조를 위한 중공업,천연자원우 부족했기 때문에, 일본의 작전 교리는 기습,야간 공격, 근접전, 높은 사기, 초전에서의 우세한 화력 등을 강조했다. 일본 외교정책은 자신이 군사전략에 연동되었다. 일본은 1936년 11월 독일과 방공협정을 맺었고, 이는 소련을 유럽의 수렁에 빠지게 만들거나 적어도 만주국-소련 국경에 대한 소련의 위협을 감소시키기 위해서였다.
Hans van de Ven,China at War,76.
이렇게 일본군 참모본부가 소련이라는 전략적 위협에 대비했지만, 중국의 일본군은 전략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중국과의 전쟁을 도발했고, 그 결과가 중일전쟁이었다는 것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당시 일본군의 독보적 전략가라 할 수 있는 이시와라 간지는 다음을 주장했다.
1937년 1월,
이시와라 간지, 일본의 중국정책 변경을 주장했다.
PEATTIE, MARK ROBERT. ISHIWARA KANJI (1889-1949) AND THE JAPANESE ARMY, A Dissertation,Princeton University,1972. 294.
일본은 과거의 제국주의 침략 정책을 포기해야 한다. 일본은 화북이 특별지역이라는 개념을 버리고, 화북 5성의 자치를 장려하는 정책을 포기해야 한다고 그가 주장했다. - 이시와라, 중국에 대한 일본 제국의 강압적 태도를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호사카 마사야스, 도조 히데키와 천황의 시대, 페이퍼로드, 2012. 173.
따라서 이시와라에게 중일전쟁은 "잘못된 시간에, 잘못된 장소에서, 잘못된 적과 싸우는 잘못된 전쟁"이었다.
1937년에 중국 주둔 일본군은 제국 전략의 짐이자 '저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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