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고립에 대처하는 일본의 자세? Le monde



최근 베이징 동계올림픽 보이콧 논란을 계기로, 중국 봉쇄 혹은 중국 고립이 아시아 국제정치의 현안이 되고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양국가들은 중국을 고립시키려 하고, 베이징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투쟁하는 상황이다. 

이는 1930년대 일본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정세와 닮았다. 고립의 주인공은 일본 제국이었다. 1931년 만주사변 이후 일본은 서양의 견제대상이 되었고, 1933년 3월에는 급기야 국제연맹에서 탈퇴했다. 국제연맹의 일본 대표 마쓰오카 요스케는 이렇게 선언했다. “인류는 2천년 전에 나사렛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았다... 일본은 십자가에 매달릴 준비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믿으며, 확실히 믿는 것은 몇 년안에 세계 여론이 바뀔 것이며, 우리는 세계에서 나사렛 예수로 이해를 받게 될 것이다.” 1) 

이리에 아키라에 따르면 2),  국제적 고립에 대처하는 일본 정부의 대처는 두가지 였다고 한다. 첫째는 현실을 인정하고, 일본과 아시아를 세계의 나머지 부분에서 분리된 독립 지역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1938년 11월 고노에 총리가 대동아공영권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것이 바로 이 같은 상황에서 였다. 일본 스스로 아시아에서 새로운 지역 질서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대동아공영권은 서양이 정한 규범과 그들만의 이익을 대변하는 국제연맹의 질서와는 다른 아시아 지역 질서를 만드려는 노력이었다는 주장이다. 

둘째, 도쿄는 독일에 접근하여 일본의 외교적 고립을 만회하려 했다. 일본은 히틀러의 독일을 설득, 장개석의 중국에 대한 원조를 중단하게 만들고, 독일이 일본의 새로운 아시아 질서를 인정하도록 만들려고 노력했다. 이 노력을 성공했고, 1938년 1월에 히틀러는 대중국 정책을 변경, 만주국을 승인하고, 일본의 팽창주의를 인정했다. 이렇게 극적으로 일본 제국은 독일이라는 서양 세력의 지지를 얻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독일의 지지를 얻으면서 일본은 미국과 소련이 자신에 대해 더욱 적대적이게 자극했다. 1939년, 미국은 일본에 대한 일련의 경제 제재 조치를 실행했다. 워싱턴은 도쿄에게 통상조약의 파기를 통보했고, 항공유에 대한 수출 중단 조치를 취했다. 러시아군도 만주-몽골 국경(노몬한)에서 교전을 벌이고, 소련이 중요한 승리를 얻었다. 

일본외교에게 보다 심각한 재앙이 된 것은 1939년 독소불가침 조약이었다. 일본의 거의 유일한 서양 동맹국인 나치 독일이 일본의 역사적인 주적인 소련과 동맹을 맺은 것이다. 독소불가침조약 체결로 인해, 일본의 히라누마 내각이 총사퇴했다.(1939년 8월 30일) 38년 5월-9월의 노몬한 전투에서 소련에게 참패한 일본은 믿었던 독일이 자신의 주적인 소련과 손을 잡는 사태에 격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히라누마는 국제정치가 "복잡하고,불가해하다"는 불만을 제기하면서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1) Paine, The Wars for Asia, 1911–1949, 35.
2) Akira iriye ,10. Asian factor, in  Martel, Gordon (ed.), The Origins of the Second World War reconsidered : the A.J.P. Taylor debate after twenty-five years,1986. 232. 

미국의 중국 고립공세에 맞서서, 베이징의 대응 전략도 1930년대 일본의 정책과 유사할 것으로 전망할 수 있다. 



덧글

  • 꾀죄죄한 하프물범 2021/12/30 15:45 # 답글

    예수가 남의 민족 침략해서 지배하라고 한 적 있는지 참 뻔뻔하게도 굴었네요;
  • 파리13구 2021/12/30 15:57 #

    마쓰오카의 클라스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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