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내부에서는 전쟁 시기에 대한 역사적 토론이 한층 제약을 받았다.
마오쩌둥 치하의 중국에서는 국민당이 일본군을 상대로 중국을 지키기 위해 한 일이 거의 없다는 설명만이 있었다. 따라서 당연히 1949년에 (공산군에게)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는 논리였다. 항일전쟁'에서 중국 인민을 이끈 모든 공은 공산당, 좀더 구체적으로는 마오쩌둥 한 사람에게 돌아갔다.
래너 미터,중일전쟁, 471.
- 우리 시대의 중국혁명 인식의 과제는 <<굿바이 모택동!>>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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