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일전쟁과 내전 그리고 모택동?" Le monde



중일의 무력대결을 넘어선, 중일전쟁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 의미는 1945년에 드러나지 않았다. 그것이 드러난 것은 1949년이었고, 바로 그때 중국 공산당이 권력을 장악했다. 중일전쟁과 중국 내전을 하나의 역사 속의 두가지 차원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1911년 이후의 중국내전에 대한 일본의 개입으로 가장 이익을 본 것은 바로 중국 공산당이었다. 왜냐하면 일본은 중국 국민당군 괴멸에 집중했고, 그 결과 국민당군은 8년의 소모적인 장기전으로 기진맥진해졌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은 중국의 방대한 땅에 주둔할 충분한 병력이 없었다. 바로 이것이 국민당과 일본제국도 통치하지 못하는 힘의 공백 지역을 만들었고, 공산당은 숨쉴 공간을 마련했고, 그 곳에서 농민들을 조직했다. 

이렇게 두 가지 요인- 즉 일본에 의한 국민당의 약화, 공산당의 활동 지역의 창출- 이 세계대전 이후의 국내의 힘의 균형에서 공산당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 Paine, The Wars for Asia, 1911–1949, 5-6.

모택동은 중일전쟁을 어떻게 해석했을까? 


1972년 일본 총리 다나카 기쿠에이가 모택동에게 일본의 침략을 사과했다.

그러자 모택동은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왜냐하면,"일본 제국이 전쟁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우리 공산당이 어떻게 거대하고 강력해질 수 있었겠소?"


리처드 번스타인, 1945 중국\미국의 치명적 선택,책과함께,2014.p.222.



중일전쟁을 용과 사무라이의 대결로 해석하는 것의 한계가 바로 여기에 있다. 

중일전쟁을 장개석과 모택동, 용과 사무라이 그리고 사무라이와 독수리의 대결로 다면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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