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중일전쟁이 없었다면?" Le monde


"만약 아시아의 전쟁이 없었다면, 미국의 유럽전쟁 개입은 보다 어려웠을 것이다."

라나 미터 Rana Mitter

진주만이 역사의 전환점인지 여부를 고려하기 전에,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은 일본의 하와이 공격이 필연적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히틀러가 1939년에 폴란드를 공격하기 전부터, 그 2년전부터 침략자들과 싸운 나라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중국이었다. 

20세기 초반 대부분 동안 중국과 일본의 갈등이 고조되었고, 1937년 7월 7일, 중일전쟁이 발발했다. 1년 뒤, 1938년 중반에 상황은 중국에 매우 불리했다. 중국의 핵심 지역이 일본인들에게 넘어갔다. 난징,베이징,상하이. 중국은 공식적 동맹국이 없었고, 소련의 비공식 원조가 있었지만, 영국과 미국은 미봉책만 실시했을 뿐이다. 다수의 목격자들은 중국 국민당 지도자 장개석의 유일한 논리적 결말은 일본의 타협이 될 것이라 전망했다.

장개석은 다르게 생각했다. 중국 공산주의들도 마찬가지였다. 양자는 통상적 전망과 다르게, 일제에 저항했고, 그들은 언제가 동맹국들을 전쟁에 끌어들일 수 있을 것으로 희망했다. 이를 위해 몇 년이 더 필요했다. 1941년 12월, 즉 진주만 사건 이후 결국 미국과 대영제국이 일본과의 전쟁에 중국과 같이 싸우게 되었다.

만약 장개석이 일본과 타협을 결정했다면, 중국은 최소한 수 십년 동안, 일본의 반식민지가 되었을 것이다. 서양 열강은 중국과의 무역과 시장에서 단절당했을 것이다. 뿐만아니라 중국의 패배는 세계대전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만약 중국이 항복했다면, 중국에 쏠린 일본의 병력과 자원 소모가 중단되었을 것이고, 진주만을 유발한 미국의 대일본 압박이 성과를 거두지 못했을 것이다. 아시아에서의 전쟁이 없었다면, 미국의 유럽전 개입은 더욱 어려웠을 것이고, 나치의 승리가 수월했을 것이다.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했을 때, 장개석은 이것이 일본 패망을 위한 전환점이 될 것을 알았다. 하지만 만약 그가 1937년과 1941년 동안 항일전을 계속하지 않았다면, 진주만 기습사건은 절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History Today,Did the Attack on Pearl Harbor Cost the Axis Powers the War?, in History Today Volume 71 Issue 12 December 2021 

덧글

  • deokbusin 2021/12/17 23:52 # 삭제 답글

    오랜만에 방문하여 덧글을 남겨 보는 군요.

    전에 중일전쟁이 없음을 가정하여 쓴 글(http://deokbusin.egloos.com/m/2836537)이 있었는데, 중일전쟁이 없다면 중국-독일간 군사 및 경제협정 등을 근거로 독일이 중국군의 근대화와 지원해주는 대신 중국은 독일의 군사장비들과 산업설비를 수입하고 대금으로 독일에게 텅스텐 등의 중요 원자재들과 외화들을 지불하는 사업이 순항하였을 것입니다. 이 협정이 라이헤나우의 공적들 중 하나이지요.

    즉 중일전쟁이 없었다면 1939년이나 40년에 독일이 전쟁을 시작하더라도 중독 교류의 혜택을 받아 보다 나아진 경제로 인한 군사력 정비 덕분에 독일의 군사력은 실제 역사보다 더 나은 상태에서 전쟁을 시작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어차피 유럽에서 전쟁이 터진 이상, 일본도 중국 정복을 더 이상 미루지는 않겠지만, 먼저 중국과 동남아시아의 유럽 이권 탈취에 나설 것이고, 이게 미국과의 전쟁으로 이어지는 방아쇠가 될 것입니다.

    그나저나 라나 미터라고 하니까, 이 사람의 저서를 우리말로 옮긴 게 있던 것 같은데요?
  • 파리13구 2021/12/18 05:13 #

    감사합니다.

    중일전쟁 (역사가 망각한 그들 1937~1945)
  • 존다리안 2021/12/18 11:45 # 답글

    장총통 그립읍니다!!
    (정작 장총통은 조선은 중국의 일부라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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