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마키아벨리주의자','그루지아 백정'이라 불린 스탈린은 모스크바에 기생하던 중국 공산당을 하대했다. 그는 중공에 대해 냉혹했다.
1929년 장학량의 중국과 소련이 만주의 동청철도를 두고 무력 충돌했다. 이 충돌을 맞아 스탈린은 중공에 무엇을 지시했을까?
다음의 스탈린의 지령을 들으면, 후에 모택동이 코민테른 노선과 적절한 거리를 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1929년 장쉐량이 소련의 중국 내 이권 회수를 주장하며 중동철도(中東鐵道) 사건을 일으켜 중국 내에 반소 기운이 높아지자, 공산당은 장학량의 행위를 '제국주의에 의한 소련 침략 전쟁의 전조'라고 간주하고 "노동자계급의 조국인 소련을 지켜야 한다”고 호소하는 캠페인을 펼쳤
다. 말할 것도 없이 코민테른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여론은 내셔널리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이러한 주장을 지지하지 않았다. 이 캠페인에 반대한 중국공산당의 초기 지도자 천두슈는 당 중앙과 격렬하게 대립한 끝에 결국에는 당에서 제명되었다. 당에서 쫓겨난 그는 공산당이 이제 ‘스탈린의의 축음기’가 되어 버렸다는 말을 남기고 이른바 트로츠키파 활동을 본격화하게 된다. 그러나 소련 · 코민테른류의 공산주의 운동이 세계적으로 대세를 이루고 있던 상황에서 트로츠키파의 운동은 내부 대립과 관헌의 탄압을 받아 소수파에 머물렀다.
이시카와 요시히로,중국근현대사 3권, 130.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