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중일전쟁 발발 후에 모택동의 중국공산당은 국민당과의 항일 통일전선에서 독자적 노선을 취하려는 조짐을 보였다. 이는 코민테른의 노선에 반하는 것이었다.
같은 해 11월 말에 스탈린은 모택동 감시를 위해서 코민테른의 왕밍을 연안에 보냈다.
12월 9일 옌안에서의 정치국 회의에서 왕밍이 코민테른의 지령을 전달했다. 모스크바의 지령은 3가지 점에서 모택동을 비판했다. 마오는 맑스-레닌주의를 이해하지 못했고, 국제주의 관점이 결여되었고, 편협한 경험주의에 기초해서 정책을 결정한다는 비판이었다. 1)
왕밍은 코민테른의 통일전선 노선에 대한 복종을 강조했다.왕명은 “모든 것은 통일전선에 복종해야 한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국민당과의 협력에 성의를 다 해야 하며, 국민당 정부의 비민주성과 소극적 항일노선에 대한 비판을 자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 왕밍의 논리는, 만약 중국이 오랫동안 일본에게 강력하게 저항한다면, 일본은 소련을 공격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된다. 이는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매우 유리하게 될 것이다.3)
모택동 비판을 위해 왕밍이 동원한 다른 논리는 중국공산당에서의 "트로츠키주의의 영향"이었다. 1937-1939년의 세계공산주의 운동에서, 트로츠키주의자라는 비난은 목숨이 달린 것이었다. 최소한 트로츠키주의자라는 꼬리표는 공산주의 운동에서의 파문을 의미했다. 자주 그 결과는 매우 심각했다. 소련에서만 트로츠키 음모 가담 혐의로 10만 여 명이 체포되거나 처형당했다. 스페인에서 소련비밀경찰이 트로츠키주의자들을 소탕했다. 4)
1) Garver, Chinese-Soviet Relations, 1937-1945, 65.
2) 서진영, 중국혁명사, 한울 아카데미, 1992. 220-221.
3) Garver, Chinese-Soviet Relations, 1937-1945, 65-66.
4) Garver, Chinese-Soviet Relations, 1937-1945, 67.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