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의 일본 정책, 편승에서 억제 deterrence 로? Le monde


1931년 9월의 만주사변 이후 소련은 극동에서 일본의 부상에 대해 편승하려 했다. 

일본제국에 대한 소련의 편승은 장개석의 공포가 되었다. 소련과 일본이 공모하여 중국을 희생하는 소일의 중국 분할 지배를 시도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주사변 이후 소련의 대일 유화정책은 소련의 상호 불가침 조약 제안, 소련의 만주국에 대한 사실상의 승인 시도, 1935년 3월에 일본에 동청철도를 매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렇다면, 일본에 대한 소련의 정책이 억제,견제로 변한 계기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1936년 11월의 방공협정이었다.

방공협정 이후, 스탈린은 일본에 대항해서 중국 편을 들기로 결정했다. (방공협정을 통해 일본이 얻은 것은 무엇인가? ㅠㅠ)

방공협정은 소련 동서에서의 양면전의 위험을 국제협정으로 가시화한 것이었다. 히틀러의 독일과 히로히토의 일본으로부터 양면공격을 막기위해서 스탈린은 일본 견제가 필요했고, 이를 위해서 장개석의 중국이 필요했다.

1936년 12월의 시안 사건에서, 모택동이 장개석 제거를 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스탈린은 장개석을 구하는데 앞장섰다. 

중국을 이용하여 일본군을 중국의 광활한 내륙으로 끌어들여 그곳에서 발목을 잡히게 하여 일본을 소련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이 스탈린의 목표였다. 모스크바는 자국의 목표를 숨긴 채 일본과의 전면전을 벌이도록 중국인들을 선동하기 위해서 열심히 공작했다. 1)

-참고
John W. Garver, Chinese-Soviet Relations, 1937-1945: The Diplomacy of Chinese Nationalism, Oxford University Press; 1 edition (September 8, 1988), 16.

1)  장융, 존 핼리데이,마오 상, 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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