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개석과 독소전쟁? Le monde


통상적으로 장개석은 역사의 패자로 간주되지만,

미국의 중국통 오언 래티모어 Owen Lattimore 는 "때로 장개석이 루스벨트 혹은 처칠 보다 더 선견지명이 있었다."고 말했다. 

장개석의 선견지명은 바르바로사 작전, 즉 1941년 6월 22일의 독일의 소련 공격에 대한 그의 인식에서 확인 가능하다.

중국은 독일의 공격 계획을 사전에 정확하게 인지했다. 1941년 봄에, 중국군의 소련 고문 바실리 추이코프 Vasilii Chuikov는 중국 첩보국의 장총이 독일의 소련 공격이 1941년 6월 혹은 7월로 예상된다는 경고를 전달받았다. 

독소전쟁의 예상 날짜가 임박함에 따라,장개석은 전쟁을 직감했다. 1941년 6월 18일에 독일-터키 불가침 조약 소식을 듣고 장개석은 독일이 하고자 하는 일을 정확하게 예측했다. 다음 날 그는 일기에 "독일의 소련 공격이 임박했다."고 적었다. 

바르바로사 작전이 실제로 벌어지자, 장개석의 즉각적 반응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담았다. "일본은 더 이상 중국을 패배시키기 위해 집중하지 못할 것이며, 더 이상 중국을 패배시켜 동아시아의 지배한다는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 샘각하지 못할 것이다." 라고 그는 6월 24일 일기에 적었다. "미국,영국,소련 연합군이 이제 일본을 견제할 것이다. 이는 중국이 국난을 이미 절반정도 극복했음을 의미한다."


-출처

PETER HARMSEN,1940-1942: THE FULCRUM OF THE TWENTIETH CENTURY? ‘Halfway Out of National Danger’: Chiang, Stalin and the Chinese Reaction to Barbarossa,

https://defenceindepth.co/2016/06/27/halfway-out-of-national-danger-chiang-stalin-and-the-chinese-reaction-to-barbaros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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