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은 베트남에서 미중관계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 Le monde

1960년대 베트남 무력개입을 고심하면서 워싱턴은 왜 '압록강'을 떠올렸는가?

과거는 미래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한국의 과거가 베트남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한국전쟁은 베트남전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특히 베트남전에 대한 미국과 중국의 정책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한국에서 대규모 유혈 지상전 경험은 중국과 미국 지도자들을 바짝 정신들이 들게 만들었고, 특히 이후 그들이 베트남에서 다시 대치하게 되었을 때 그랬다. 한국전쟁에서 중국은 미군의 가공할 화력에, 미국은 중공군의 정신력에 놀랐다. 가급적으로 이후 아시아에서 미국과 중국의 지상전은 피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가령, 1954년 호치민이 베트남 전체의 무력 통일을 위해 노력할 동안, 베이징이 지원을 주저한 것은 한국전쟁에 대한 중국 지도부의 기억 때문이었다.  모택동은 미국과의 또 한번의 대규모 무력충돌을 원하지 않았고, 베트남에 대한 미국의 개입이 없게 하도록 노력했다.  

한국전쟁은 중국과 미국이 장비,화력,해-공군력이란 관점에서 현저한 전력차를 가지고 있음을 드러냈다. 중국은 미국과의 전쟁에서소련 무기에 주로 의존했다. 이것이 많은 중국 공산당 간부들이 중국의 산업와 국방의 현대화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한국전쟁이 중국이 경제 재건을 위해 나라의 주요 자원을 투자하는 것을 막았다. 따라서 1953년 중국은 제1차 경제개발 5년계획을 시작했고, 경제의 사회주의 전환을 실천했다. 국내적 필요에 따라, 주은래와 다른 중국공산당 간부들은 평화로운 국제정세를 원했다. 중국은 평화를 원했고, 이는 평화공존 정책으로 구현되었다. 이러한 국제적,국내적 제약들 때문에, 모택동의 사고에서 국제주의적 충동이 제어되었다. 그 결과, 한국 전쟁 휴전 이후, 제네바 회의와 반둥 회의에서 모택동은 혁명 전파 보다는 중국의 국익, 즉 평화공존 정책에 관심을 보였다. 중국이 소련과 더불어 국제적 긴장 완화를 주장한 것은 바로 이 같은 상황에서 였다.1)

유사하게, 워싱턴이 1960년대에 베트남에 대한 무력 개입을 고심할 때, 개입의 범위를 제한한 요인은 한국전쟁의 기억이었다. 존슨 정부 국무부에서 아시아,태평양 정책을 담당한 윌리엄 번디는 이후의 회고에서, "우리는 중국의 개입 가능성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는 확실히 압록강을 마음 속에 매우,매우 강하게 떠올렸다."

린든 존슨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전쟁 당시의 안 좋은 기억이 린든 존슨의 베트남 전쟁 정책에 영향을 주었다. 한 참모가 중국이 감히 주변국에서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도발할 것으로 예상되지 않는다고 보고하자, 존슨은 대답했다."그것이 바로 맥아더적인 생각이다." 2)

1) Yang Kuisong, Changes in Mao Zedong's Attitude toward the Indochina War, 1949– 1973, Cold War International History Project Working Paper 34,2002,5-6.

2) Mark Atwood Lawrence and Fredrik Logevall, eds., The First Vietnam War: Colonial Conflict and Cold War Crisis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2007), 288.

참고- 

Qiang Zhai, The Dragon, the Lion, & the Eagle, 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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