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캐넌과 헨리 키신저 그리고 중소분열? Le monde

조지 캐넌과 헨리 키신저 (왼쪽이 캐넌, 오른쪽이 키신저)

조지 캐넌과 헨리 키신저는 미국의 냉전 전략의 설계자들이었다. 캐넌이 봉쇄정책을 고안했다면, 키신저는 데탕트를 실천했다. 

키신저는 본인이 캐넌보다 한 수 위임을 주장했다. 평생동안 캐넌은 가장 높이 올라간 공직이 '대사'였지만, 그래도 키신저 자신은 '국무장관'까지 올라간 것이, 캐넌과 본인의 차이라는 것이었다. 일개 대사(유고슬라비아 대사, 1961 - 1963), 가 보는 세상과 외교정책의 총책이 바라보는 세상은 다른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었다. 

캐넌과 키신저는 공산권의 대분열, 즉 중소분쟁을 어떻게 미국 국익에 맞게 이용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도 달랐다. 

케네디 대통령 시대에 조지 캐넌은 중소분열의 국제정치 상황에서 모스크바와의 관계개선을 통해서 보다 더 위험한 중국을 압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 

1969년 여름의 중소 국경분쟁으로 인한 전쟁 위기에서 닉슨은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중소분쟁에서 미국은 중국의 패배를 용납하지 않겠다고 결정한 것이다. 당시로서는 충격적이었다. 즉 당시의 상황에서, 소련이 한층 더 위험한 상대이며, 따라서 중소전쟁에서 만약 중국이 참패하면, 미국의 이익에 반한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는 닉슨 대통령이 중국 문제에 관한 한, 지정적학 고려가 다른 모든 고려를 압도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것이다. 이것을 당시에 키신저는 다음과 같은 정책으로 정리했다고 한다 : 만약 소련과 중국이 대치할 경우, 미국은 중립적 입장을 취하겠지만, 그런 틀 안에서 가능한 한 최대로 중국 쪽으로 기울 것이라는 것이다. 키신저의 회고에 따르면, 이는 미국 외교 정책에서 혁명적 순간이었다고 한다. 즉, 20년 동안이나 접촉도 없었고, 한국에서 한차례의 전쟁과 대만문제로 두 차례의 군사적 충돌을 했던, 한 공산주의 국가의 생존에 대해 미국이 지정학적 전략적 이해관계를 가진다고 미국 대통령이 선언했던 것이다! 

중소 분열에서 캐넌이 모스크바와 손을 잡고 중국을 압박하고자 했다면, 69년 국경분쟁에서 닉슨과 키신저는 중국 편에 서서 소련을 압박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키신저가 중소분쟁에서 중국편을 들자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중소의 분열을 부채질할 필요도 있었지만, 이것이 한 쪽을 편들어 다른 한 쪽과 적대하는 식이 되어서는 안되었고, 양쪽 모두와의 관계의 균형을 도모해야만 했다.이러한 미묘한 입장에 대해서 키신서는 훗날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마오타이 주와 보드카를 동시에 마시려고 했다." 2)

캐넌은 키신저의 미중화해 정책에 비판적이었다. 1948년 중국에서 국공내전이 한창인 가운데, 캐넌은 자신의 경력에 위험이 갈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수파 의견을 개진했다. 즉 중국 공산주의자의 승리가 필연적으로 재앙은 아닐 것이라는 주장한 바 있었다. 미국이 공산중국과 손을 잡아 소련을 압박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1969년 닉슨 행정부가 정확하게 바로 그 정책(1948년에 캐넌이 주장한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을때, 캐넌이 백악관에 있는 키신저에게 전화를 걸어와, 전직 소련 주재 미국대사들 모임을 대표해서, 중국 개방 시도에 대해서 소련이 전쟁으로 대응할수도 있다고 경고했다고 한다. 3)

1) Yifan Song,American Perceptions of Sino-Soviet Relations: 1944 - 1963,A thesis,Duke University,2018. 81.

2) 랑글레, 프랑수아, 제국의 전쟁 -중국 vs 미국 누가 세계를 지배할 것인가, 소와당, 2012,p.38.

3) kissinger, Mr X -A Review of George F. Kennan: An American Life by John Lewis Gaddis,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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