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닉슨이 미래의 데탕트의 맹아를 공개했다. Le monde


1954년 8월 18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아이젠하워 정부의 중국 정책의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합참의장 래드포드가 극단적 의견을 주장했다. 중국과의 전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었다. 

부통령 닉슨은 반공투사로서의 명성이 높았음에도 미래의 데탕트 정책의 맹아를 보여주었다. 중국에 대한 그의 입장은 다소 미묘했다.

과거 극동을 순방할 동안 닉슨은 홍콩 총독을 만나서, 서양은 중국에 대해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고, 총독은 닉슨의 자제심에 인상을 받았다. 

순방 후 귀국한 닉슨은 다른 정부 관리들에게 베이징 체제의 전복 가능성은 희박하고, 중국과의 무역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장개석에게 본토 수복의 야심을 포기하고, 타이완 발전에 매진하라고 조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회의에서 닉슨은 중국에 대한 유화정책에 반대했다. 영국식의 부드러운 정책, 중국 국가를 승인해야 한다는 주장, 중국과의 완전한 무역, 중국의 유엔 가입 등을 통해서 모택동을 아시아의 티토로 만들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닉슨이 반대했다. 이런 유화정책은 중소 분열 보다는 중국 공산당의 아시아 지배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닉슨은 합참의장 래드포드의 주장처럼, 유화정책의 대안은 전쟁 뿐이라는 극단론에도 반대했다. 

닉슨은 제3의 길을 주장했다. "전쟁과 유화론의 사이의 중간지대가 있다. 이것을 토대로 장기적으로 소련과 공산 중국이 서로 찢어지게 만들어야 한다." 그는 이러한 중간지대의 행동 영역을 "거친 공존" 정책으로 불렀다. "tough coexistence." 닉슨은 "거친 공존 정책이 결국에 중국과 소련 사이에 쐐기를 박을 것이다."고 결론내렸다. 

닉슨의 주장은 공산 중국을 국제정치의 상수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를 위해서 미국의 우호 혹은 협력이 필요하지 않고, 전쟁을 할 필요는 더욱 없었다. 


참고- 

Gordon H. Chang, Friends and Enemies. The United States, China, and the Soviet
Union,1948-1968, A DISSERTATION,Stanford University,1987. 143-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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