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리지웨이는 미국 공군의 허세를 비판했다. Le monde


리지웨이는 미국 육군 장군으로 한국전쟁에서 미국 8군 사령관,UN군 사령관을 지내고, 1953년 8월에는 미국 육군참모총장이 되었다. 

1954년 4월, 디엔비엔푸 위기에서 리지웨이는 신중한 대처를 주장했다. 

한국전쟁의 경험을 통해서 육군 참모총장 리지웨이는 합참의장 아서 래드포드의 다음 주장에 동의할 수 없었다. 

디엔비엔푸 위기에서 미국의 군사개입 주장을 주도한 것은 아서 래드포드 Arthur W. Radford 합참의장이었다. 래드포드는 협상론자들을 패배주의자로 규정했다. 합참의장은 서양이 군사 개입이냐 아니면 인도차이나와 더 나아가 동남아시아 전체를 잃느냐를 두고 선택에 직면했다고 진단했다. 그에 따르면, 통킹은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핵심지역이었다.  그는 프랑스가 육군을 증원하고, 미군이 공중과 해상에서 지원하면, 통킹을 6개월에서 9개월 정도 사수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미군 사절단이 베트남 군대를 훈련시켜서 통킹 방어에 동원해야 한다고 그가 주장했다. 1) 

왜 리지웨이는 공군력으로 디엔비엔푸에 포위된 프랑스군을 구출할 수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는가? 그는 공군력과 공습의 한계에 대해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때는 1951년 8월, 미국 공군은 스트랭글 작전 Operation Strangle 을 시작하고, 공습을 통해서 공산세력의 보급망을 초토화시키려 했다. 51년 8월부터 미국 공군은 87,522회의 출격으로 공산군의 공급망을 파괴했다. 

처음에 리지웨이는 스트랭글 작전으로 적의 공급망이 파괴될 것을 기대했지만, 그는 곧 미국 공군력에 대한 환상을 깨게 되었다. 그는 공군 사령관에게 이렇게 말했다. "만약 지난 10일 동안 당신이 보고한 대로,  적의 트럭이 파괴된 것이 사실이라면, 아시아 전체에 남은 트럭은 없을 텐데 말입니다." 2) 

1951년 12월이 되면, 북한은 6시간안에 철로를 보수하고, 이틀에서 사흘만에 다리를 복구했다. 1952년 5월에 공습에도 불구하고 전선에 보내는 적의 보급물자가 오히려 늘어나게 되었다는 점이 자명해지게 되었다. 3)

육군 리지웨이에게 결국 전쟁은 지상군이 하는 것이었다. 공군이 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1) Fredrik Logevall, Embers of War: The Fall of an Empire and the Making of America's Vietnam, Random House Trade Paperbacks; Reprint edition (January 14, 2014), 726-727.    

2) Conrad C. Crane, "Matthew Ridgway and the Value of Persistent Dissent," Parameters 51, no. 2 (2021), 13.

3) 위키백과, Operation Strangle (Korean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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