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과 호치민의 베트남 공산주의의 관계?" Le monde


인도차이나의 지역 강국인 태국은 호치민의 공산주의 운동에 대해 어떻게 대처했을까?

1945년 베트남의 8월혁명 이후 1946년 12월에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발발하게 전까지 호치민이 주력한 것은 외국의 선의를 얻는 외교활동이었다. 

스탈린의 소련은 호치민의 구애에 냉담했다. 

흥미로운 것은 태국 정부가 보인 반응이다. 물론, 태국 정부는 베트남 민주공화국을 승인하지 않았다. 다만, 1946년 늦 여름 방콕에 베트남 민주공화국 대표부를 개설하는데 동의했다. ‘Representational Office of the Democratic Republic of Vietnam’ 대표부는 태국의 베트남 교민들의 원조로 개설되었고, 1947년 4월 14일부터 완전히 가동하기 시작했다. 

북베트남 대표부는 태국의 프리디 바노밍 Pridi Banomyong 정부의 묵인을 받았다. 

베트남 측의 연구에 따르면, 방콕의 대표부는 심지어 프리디 정부의 자금을 지원받았다. 그는 베트남인들이 태국 국경부근에 전쟁 기지를 만들어 이곳에서 훈련을 받은 병사들이 라오스와 캄보디아를 통해 베트남에 돌아가는 것을 허락했다고 한다. 

냉전 초기 역사에서 방콕은 베트남 공산주의 운동을 위한 중요한 외교 거점이었다. 방콕의 북베트남 외교 대표단은 이곳에서 동남아 국가들 그리고 세계 강대국들과 외교적 접촉을 전개했다. 

이렇게 방콕은 1948년 방콕의 보수주의 군사 쿠데타 이전까지 베트남 민주 공화국 외교를 위한 열린 창문 역할을 했다. 1948년 이후 태국의 새로운 통치자는 북베트남 대표부의 외교 기능을 제거했고, 그 활동에 제동을 가했다. 

48년 이후 북베트남의 외교활동 거점은 랭군으로 이동했다.


-참고

Mari Olsen, Soviet-Vietnam Relations and the Role of China, 2.


- 1945-1947년 동안 태국과 호치민의 베트남은 인도차이나에서 프랑스 제국을 몰아내기 위해서 의기투합했다는 것이다.



덧글

  • 함부르거 2021/09/30 13:21 # 답글

    1940년대 태국의 외교 행보를 보면 현란하기 그지 없더군요. 자국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공산주의는 물론 악마와도 거래할 수 있었을 거 같습니다.
  • 파리13구 2021/09/30 13:28 #

    네, 대단한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우리 나라에서의 태국 연구는 ㅠㅠ
  • rumic71 2021/09/30 14:42 #

    연합군 대우 추축군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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