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가 대립한 냉전시대에 같은 공산주의 형제국가이자 혈맹인 중국과 베트남은 왜 전쟁을 한 것인가? 이것은 냉전적 사건인가, 아니면 "탈냉적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가?
제3차 인도차이나전쟁은 1979년 중국과 베트남의 전쟁을 말한다. 베트남은 1979년 이후 전쟁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E.H. 카가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 했다면, 베트남에서 역사는 공산당과 과거의 대화인 것처럼 보인다. 역사란 과거에 대한 공산당의 기억이며, 공산당의 현재적 필요에 따라 변화하는 것인가?
서울대의 마틴 그로스하임 Martin Grossheim은 79년 전쟁에 대한 기억의 변화를 이렇게 추적했다.
1980년대 동안 하노이와 베이징의 관계는 최악이었다. 베트남의 박물관,역사교과서,영화는 1979년 2월과 3월의 사건을 "중국의 침략"으로 규정했다. 가령, 호치민시의 미군 전쟁범죄 박물관 The Museum for US War Crimes은 1988년의 특별 전시를 통해서 1979년에 있었던 "중국 팽창주의자"들의 범죄를 전시했다.
그런데, 그스로하임에 따르면, 그가 1992년에 다시 그곳을 방문했을 때, 전시실은 여전히 있었지만, 텅 빈 상태였고, 중국군의 범죄에 대한 기록도 모두 사라졌다. 당시 그는 중국의 범죄에 대한 전시가 결코 없었다는 말을 듣기조차 했다고 한다.
이런 박물관의 변화,즉 중국에 대한 전쟁의 기억의 변화는 1991년 11월의 중국-베트남 관계의 정상화를 반영했다. 91년 이후 1979년 전쟁에 대한 기억은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심지어 전쟁 기념일에도 국가 미디어는 사건을 기념하지도 중국의 전쟁범죄를 인정하지도 않았다.
뿐만아니라 전쟁을 기념하려는 기자 혹은 독립연구자의 글은 검열 대상이 되었다.
그런 가운데, 1979년 전쟁에 대한 기억의 거의 완벽한 망각상태가 몇 년 뒤에 끝났다. 남중국해에서의 중국의 도발적 행동 때문이었다. 2014년은 전쟁에 대한 기억의 변곡점이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석유 시추선을 파라셀 군도에 설치하자 베트남이 이에 적극 반대하면서 양국관계가 악화되었고, 베트남 전역에서 반중 시위가 일어났다. 이런 반중정서에 편승하여 많은 베트남인들이 1979년 전쟁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반중 정서 속에서 2019년 전쟁 40년 기념의 해를 맞아, 베트남 당국은 사건을 비교적 상세하게 기념했다. 물론 베트남 당국이 보다 기념하고자 했던 사건은 1979년의 크메르 루즈에 대한 베트남의 승리였다. 캄보디아에 대한 승리 기념식은 공산당의 지도부가 참석하면서 성대하게 열렸지만, 79년의 중국과의 전쟁 기념식은 조촐하게 열렸다. 이 행사를 주관한 것은 베트남 노동부였다.
2019년 1월에 베트남 역사협회와 베트남 사회과학원이 공동으로 주최한 79년 전쟁에 대한 학술회의가 있었다. 학술회의의 제목은 "조국의 북부국경을 지키기 위한 투쟁- 40년 회고"였다. 회의는 이 사건을 "군사적 투쟁"으로 규정하고, 심지어 "전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도 않았다.
이 해석은 전쟁 40주년을 맞아 베트남 선전 및 교육부가 마련한 지침에 따른 것이었다.
이상과 같이 베트남 국가와 공산당은 중국과의 전쟁에 대한 기억을 끊임없이 관리하고 통제하려 한다.
참고-
Martin Grossheim,How the Vietnamese Began to Remember a Forgotten War, 2021 -주소- https://www.wilsoncenter.org/blog-post/how-vietnamese-began-remember-forgotten-war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