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의 냉전전략과 베트남?" Le monde


냉전사의 주요 쟁점 중 하나는 냉전 초기 스탈린의 대외전략은 공격적이었는가, 방어적이었는가?

스탈린이 방어적이었다는 주장의 논거는 1947년 9월의 코민포름 창설과정에서 나타났다. 

션즈화는 스탈린의 냉전 초기 전략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필자는 스탈린이 최초에 실행했던 방침은‘외선방어, 내선진공(外線防禦, 內線
進攻)’인 것으로 생각한다. 즉, 미국과 서방에 대해 보수적 방어적 전략을
취하면서 역량을 집중하여 사회주의 진영 내부에 대한 숙청을 진행하고, 서
방에 맞서는 안정적인 내부질서를 만들기 위해 사상과 행동을 통일하는 것
이다. 스탈린은 당시 국내 무장투쟁을 이끌고 있던 그리스공산당의 코민포
름(Cominform) 참가를 거부했다. 또한 도나우강 유역과 북유럽 각국 공산
당 대표회의를 개최하자는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그리스혁명 지원
문제에서 티토(Josip Broz Tito) 유고 수상이 과격한 행동을 취하자 결국 유
고슬라비아공산당의 코민포름 축출을 결정했다. 이 모든 것은 소련의 냉전
전략이 공격성을 갖고 있지 않았을 뿐 아니라, 미국과의 직접적인 충돌을 피하거나 늦추려 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션즈화, 극동에서 소련의 전략적 이익보장 : 한국전쟁의 기원과 스탈린의 정책결정 동기,pp.16-17]   

스탈린 냉전의 방어적 성격은 1945년의 호치민의 베트남 8월 혁명에서도 확인된다.
소련과 프랑스 공산당은 호치민의 혁명에 대해 냉담하거나 애써 무관심했다. 심지어 베트남 민주공화국을 국가로 승인하지 않았다.  

조지 캐넌의 미국의 봉쇄정책의 전제는 소련 공산주의의 무제한적 확장 야욕이지만, 

당시 스탈린의 냉전은 이미 '자가-봉쇄적 성격 self-containment' 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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