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인도차이나 공산당과 트로츠키파의 갈등? Le monde


1930년대 베트남 공산주의 운동에서 소련 추종의 인도차이나 공산당이 트로츠키주의자들과 갈등을 했다고 한다.

1933년 1월 히틀러의 집권과 더불어, 소련은 파시즘을 자신에 대한 진정한 위협으로 간주했고, 결과 탄생한 것이 1935년 제7회 코민테른 세계대회의 인민전선론이었다. 즉 세계 공산주의자들은 파시즘 타도를 위해서 중도파,민족주의자와 협력하는 인민전선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인민전선 바람 속에서 베트남에서 인도차이나 공산당과 베트남의 트로츠키파의 협력이 구축되었다.

하지만 양자의 협력은 어려웠다. 트로츠키파는 파시즘이라는 공동의 위협에 맞서 부르주아 정당과의 동맹을 맺어야 한다는 코민테른의 전략에 반대했다. 그들은 인도차이나 공산당이 프롤레타리아의 이익에 반해서 계급의 적인 부르주아와 손을 잡았다고 비난했다.

처음에 양대 정파가 협력관계를 유지했다. 1936년 여름, 인도차이나 공산당 대외 협력국은 "만약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인민전선에 대해 진지하다면, 우리는 그들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지만, 우리는 그들을 말이 아니라 그들의 행동으로 판단한다."

두 파벌의 결별은 모스크바에서 결정되었다. 1937년 5월, 프랑스 공산당이 인도차이나 공산당에 전문을 보내서, 프랑스 공산당은 베트남에서의 트로츠키파와의 협력이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한다고 선언했다.

1937년 여름이 지나면서 양측의 협력 관계는 끝장났고, 사이공에서 양 파벌은 지지자 모집을 위한 경쟁을 했고, 상황이 항상 인도차이나 공산당에게 유리했던 것은 아니었다.


참고- Duiker, The Communist Road to Power in Vietnam, 56.


- 히틀러의 부상에 대한 스탈린주의와 트로츠키주의의 대응을 보면,

왜 결국 승리한 운동이 스탈린주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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