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5년 베트남 민주 공화국 건국 이래 하노이 혁명가들에게 베트남을 넘어선 라오스와 캄보디아 혁명의 전망이 존재했다.
호치민을 위시한 베트남 공산주의자들에게 베트남 투쟁은 인도차이나 혁명의 일환이었다. 이러한 세계혁명의 지향성은 1975년 베트남 공산화이후 더욱 노골적인 것으로 되었다.
이러한 베트남 혁명의 세계적 성격을 고려할 때, 1954년 4월에 아이젠하워가 주장한 도미노 이론이 부분적으로 옳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워싱턴이 오해한 것은 하노이의 세계혁명이 모스크바와 베이징의 지휘를 받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베트남 공산주의자들은 1940년대 초 이래 자신의 혁명운동의 주인이었고, 모스크바와 베이징의 꼭두각시가 아니었다.
심지어 베이징과 하노이는 인도차이나 공산주의의 패권을 두고 경쟁하는 관계였다.
참고-
Lüthi,“Vietnam”, in Cold Wars-Asia, the Middle East, Europe, 160.
인도차이나에 대한 하노이와 베이징의 경쟁구도에서 모스크바는 전자 측에 가담하면서, 중국의 팽창주의를 견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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