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키신저, 사이공의 반공체제에 대해서... Le monde

미국은 베트남의 공산화를 막기위해 전쟁에 개입했다. 특히 모택동의 중국의 공산주의 도미노가 동남아로 확대되는 것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1972년이 되면 헨리 키신저는 사이공의 반공주의 정부에 대한 인식을 달리하게 되었다.

1972년 5월의 모스크바 미소 정상회담에서

소련 측 대화록에 따르면, 키신저는 소련 측에 다음을 말했다.

키신저, 소련 측에 워싱턴은 남베트남의 어떤 정부에 대해서 속박되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사건 전개에서 새로운 정치 세력이 사이공에 등장할 수 있으며, 심지어 공산주의 정부가 수립될 수도 있다. “미국은 그것을 막지 않을 것이다. 비록 미국이 자신의 손으로 현재 그것을 할 수는 없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I.V. Gaiduk, The Soviet Union and the Vietnam War, 240.

키신저에게 세계질서를 위해서 반공주의란 가치는 희생이 가능했다. 

아프가니스탄의 인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곳 주민들의 인권이 소중하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아프간 인권은 유엔 등 국제기구의 관심사이지 백악관 외교정책의 핵심 사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세계질서가 인권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국제정치 철학에 관련된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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