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의 해금령과 복건성? Le monde

"복건성은 인구가 밀집해 있고 경작지가 부족하다. 5대 곡물 중 미량만 생산된다. 이런 이유로 연안 주민들은 정크선을 집으로, 바다를 밭으로, 오랑캐와의 무역을 생계수단으로 간주한다."

복건성 지방관이 명 조정에 올린 보고서

1593년. 1) 

복건성의 생존조건을 고려할 때, 명나라의 해금령은 이 지역에 대한 저주이자 재앙이었다. 1433년 명나라의 해금령과 더불어 복건성의 쇠락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바다에 생존을 의존하는 복건성 사람들에게 해금령에 맞선 생존 대안이 필요했다고 생각된다. 

실제로 15세기 이후 복건성 사람들은 명나라의 해금령과 바다의 의존하는 생존조건 사이에서 어떤 대안을 마련했을까? 즉 바다가 생존수단인데, 나라에서는 바다로 나가지 말라고 할때 복건사람들은 어떤 해법을 만들어 갔을까?

밀무역,해적, 해외이주 등이 대안이었을 것이다. 

17세기 동아시아 바다를 주름잡은 정성공 가문이 복건성 출신이며, 

현재 동남아시아의 화교집단의 주류가 광동성과 더불어, 복건성 출신이라는 점이 해답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1)  Xing Hang,Conflict and Commerce in Maritime East Asia,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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