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대왜구’,임진왜란,사쓰마의 류큐복속? Le monde


조영헌의 관련 논문에 따르면, 위의 세가지 사건의 근저에 있는 것은 중국과의 교역에 대한 일본의 욕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1550년대-1560년대의 왜구 위기,‘가정대왜구’ 嘉靖大倭寇 시기 Jiajing wokou raids. 말하자면,  1552년-1555년 왜구 함대가 많을 경우 200척의 함선을 동원하여 중국의 해안을 유린했다. 한 번은 왜구가 명나라 제2의 도시, 난징의 관문까지 공격하기도 했다. 1) 

임진왜란의 발발 배경은 1567년 명나라의 해금정책 완화로 福建省 漳州의 항구 월항月港이 개방되었지만, 일본이 예외적으로 교역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2) 명나라의 무역 정책이 일본을 노골적으로 배제한 점에 대해서 풍신수길이 불만을 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1609년, 사쓰마 번이 류큐 침공(琉球侵攻)을 했다. 徐光啓는 이것이 본질적으로 貢市, 즉 ‘교역의 欲求’에서 말미암은 것이라는 해석하면서, 朝鮮과 琉球에 대한 일본의 침략을 본질적으로 동일한 맥락에서 해석했다. 3) 

정리하자면, 16세기 중반 중국의 이른바 은의 세기 China’s “silver century” (1540–1640) 4)가 도래하면서 동아시아의 해상무역의 번영의 시기가 도래했다. 하지만 명나라는 해금정책으로 일본이 이 이익이 높은 무역에 참여하는 것을 막으려 했다. 이러한 명나라 해양정책에 맞서 일본은 대책을 내놓았고, ‘가정대왜구’,임진왜란,사쓰마의 류큐복속은 무역에 대한 일본의 욕구를 대변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1) Von Glahn, R. (2020). 54.

2) 조영헌. (2017). 明 後期 月港 開港과 壬辰倭亂.92.

3) 조영헌. (2017). 明 後期 月港 開港과 壬辰倭亂. 114.

4) Von Glahn, R. (2020). The Political Economy of the East Asian Maritime World,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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