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의 해금령과 류큐왕국의 흥망? Le monde




중국의 해금령은 이웃국가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명의 해금령과 류큐의 흥망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명나라 건국 초기의 1374년 해금령 이후 류큐는 역사적인 발전기를 맞이했다. 우선 해금령 직전인 1372년 류큐는 명나라에 처음을 조공하면서 조공관계를 맺었다. 

명의 해금령 덕분에 중국 상인이 사라진 동아시아의 바다에서 류큐왕국은 왕성한 해상무역을 전개했다. 

1429년, 류큐왕국이 하나의 통일왕국으로 성립되었다. 한반도의 여말선초에 해당한다. 류큐는 동아시아의 중계무역국으로 약 150여년에 결쳐서 이른바 류큐의 대교역 시대라 불리는 번영기를 맞이했다. 1) 

그렇다면 류큐의 번영기는 왜 150년 만에 끝난 것인가? 

1567년 명나라의 해금정책 완화 탓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제 명나라 무역상들이 동아시아의 바다에서 다시 활개를 치게 되었던 것이다. 

명의 해금정책 완화의 최대 피해국은 바로 류큐 왕국이었다. 1567년 해금정책 완화로 류큐가 가진 조공무역의 특혜를 유명무실하게 만들었다. 2)  

번영기가 끝나고 쇠락을 거듭하던 류큐에게 찾아온 운명은 무엇이었는가?

1609년, 류큐 침공(琉球侵攻)은 1609년(쇼네이왕 21년, 명나라의 만력 37년, 일본의 게이초 14년)에 일본의 사쓰마 번이 류큐국에 침략하여 발생한 전쟁이다. 전쟁 이후에 류큐국은 사쓰마 번의 영향 하에 놓이게 되었고, 일본과 명 두 나라 모두의 영향력 아래에 놓이게 되었다. 3) 

정리하자면, 명의 해금령으로 류큐는 발전과 번영의 시대를 맞이하다가, 해금령 완화 더불어 쇠락하면서 결국 완전 독립왕국의 지위를 잃었다고 볼 수 있다.

1) 강상규. (2007). 일본의 유구병합과 동아시아 질서의 변동, 15.

2) Von Glahn, R. (2020). The Political Economy of the East Asian Maritime World in the Sixteenth Century.  59.

3) Robert K. Sakai, ‘The Ryukyu (Liu-Chiu) Islands as a Fief of Satsuma,’ in John King Fairbank, ed., The Chinese World Order (Cambridge, Massachusetts: Harvard University Press, 1968), 12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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