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해금 정책에 인도네시아인은 어떻게 대처했는가?" Le monde

아래 논문을 초록만 읽었다.

논문 제목 : 명청 왕조의 해금 정책이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북부 해안 거주지에서 출토된 도자기에 미친 영향?

The impact of Ming and Qing dynasty maritime bans on trade ceramics recovered from coastal settlements in northern Sumatra, Indonesia

중국의 명청 왕조의 해금 정책이 인도네시아 도자기 무역에 미친 영향은 어떤 것인가?

중국은 다음과 같은 해금 정책을 실시했다. 명나라 1차 해금(1371-1509), 명나라 2차 해금(1521-1529) 그리고 청나라 해금 (1654-1684) 

연구자들은 인도네시아 아체의 해안 40km 를 발굴하여, 동남아시아에서 중요한 해상 실크로드였던 지역의 도자기 유물을 분석했다. 

중국의 3번의 해금 동안 해당 지역의 중국 도자기 양은 감소했다. 

명나라 1차 해금 동안, 아체 주민들은 중국 도자기의 대체물로 버마와 태국산 도자기를 수입했다. 

명나라 2차 해금 이후, 중국산 도자기 수입이 증가했다. 

청나라 해금 동안, 일본과 베트남산 도자기들이 즉시 쇄도하기 시작했고, 17세기 중반까지 도자기 시장 지분을 유지했다. 하지만 청의 해금이 끝난 후, 청왕조의 말까지 중국산 도자기가 시장을 지배했다. 

이 논문은 이 시장에서 중국산 도자기가 중요했고, 해당 시장이 중국 제국의 해금 정책에 어떤 식으로 대처했는지를 구명했다. 


- 이러한 시각을 바탕으로, 동아시아 해양무역사 중간고사 문제는 이런 식으로 출제할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당신이 1521년 복건성의 도자기 장인이었다면, 정부의 해금정책과 16세기 아시아 도자기 시장 상황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어떤 사업적 결정을 내렸을 것인가? [참고- 2019년 한일 반도체 전쟁에서 일본 JSR과 같은 포토제지스트 업체가 직면한 상황도 참고하시오.]



덧글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