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족영웅 정성공 기념동상>
역사는 현재 사회의 목적에 봉사하는 시녀인가?
정성공은 근대초의 세계사에서 어느 곳에 깊이 뿌리 박힌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부유하는 경계인의 삶을 살았다. 따라서 그에 대한 해석도 여러가지였다. 중국 본토, 타이완, 네덜란드,일본(우리 일본 핏줄이다), 심지어 조선도 나름의 해석을 제시한 바 있다. 특히 17세기 조선에서는 정성공은 정감록의 정도령이 되었다. 명나라에 대한 재조지은을 배신하고 야만족 청에 항복한 조선을 정성공이 징벌하러 온다는 믿음이 존재했다.
과거 대만에서 정성공은 중국 본토와 마찬가지로 민족주의 영웅이었다. 서양 오랑캐 네덜란드를 몰아내고 타이완을 중국 땅에 편입시킨 '애국자'였을 뿐만 아니라, 만주족에 반대해서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끝까지 지킨 '충신'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그에 대한 타이완의 관심은 정성공 개인 보다는 그의 조직, 즉 정씨 가문과 가문의 해상 조직에 있다. 정성공 개인은 중국 본토에 연결되지만, '정씨 해상왕국'은 중국에 대해 자치적이었기 때문이다. 가령 역사가 피터 강의 해석은 현재의 대만 사회가 과거 권위주의 독재국가에서 다원주의 민주주의 국가로 발전했을 보여준다. 이러한 대만 현재 사회의 변화가 정성공에 대한 역사 해석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타이완이 자치적 자유 민주주의 국가로 발전하면서, 정성공의 시대는 점점 타이완의 명나라에 충성한 체제라는 해석에서 멀어져 갔다. 전통적 해석은 전후 타이완을 지배한 중화민국 체제의 입맛에 맞았다. 하지만 최근의 해석은 "정씨 왕조" 혹은 "정씨 체제" 혹은 "정씨 왕국" 같은 중국으로부터의 자치적 성격을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정씨 왕국의 경제 정책과 경제 발전에 주목하는데 이는 다시금 타이완의 최근의 급격한 경제발전을 유추하게 만든다. 말하자면 최근 타이완의 정성공 해석은 중국 본토에 독립하여 독자적으로 발전해 나가는 자유 민주주의 국가 타이완이라는 미래상에 부합하는 것이라 하겠다.
참고-
Tonio Andrade and Xing Hang(eds.),Sea Rovers, Silver, and Samurai,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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