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동남아시아의 사무라이는 누구인가?" Le monde


최근 일본 제품이 해외에서 전반적인 무기력함을 보여주는 가운데, 동남아시아에서는 자동차,가전 등이 여전히 선전하는 것을 보면서 일본과 동남아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양자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20세기 일본제국의 대동아공영권 이전의 역사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스티븐 턴불의 책은 16세기와 17세기의 양자 관계를 주제로 한다. 제목- 사라진 사무라이 : 동남아시아에서의 일본 용병, 1593-1688.
The Lost Samurai: Japanese Mercenaries in South East Asia, 1593–1688

아마존의 책소개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근대 초의 일본의 해외 용병에 대한 영어로 된 최초의 소개이다.

<사라진 사무라이>는 일본 사무라이에 대한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이며, 16세기말 이후 거의 100년 동안 일본 사무라이들이 용병으로 고용되어, 시암,캄보디아,버마,스페인,포르투갈의 왕과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를 위해 일했다는 것이다.

당시에 일본 사무라이는 극적인 공격조, 왕실 경호대, 주둔군 수비대 그리고 적극적인 암살자로 활약했다. 그 결과 강력한 일본 전사라는 정형이 만들어졌다.

동남아의 왕들이 일본 전사들을 장기고용 형식으로 고용했다면, 유럽 고용주들은 단기 계약으로 특별 작전에 그들을 이용했다. 전자의 군주들이 일본 용병을 신뢰하는 경향을 보였다면, 유럽인들은 그들을 두려워했다. 유럽인들은 처음에 일본인들의 기술에 열광하다가, 얼마지나서는 일본인들이 장래에 칼끝을 자신에게 겨눌 것이라 의심하게 되었다. 가령, 마닐라의 스페인인들은 지역 봉기가 일본의 필리핀 공격으로 비화될 수 있다는 공포에 시달렸다.

17세기 동안 동남아의 일본 해외거주지, 제펜타운이 이후의 국제관계 발전에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이 주도하는 대동아공영권의 근대초 버전으로 말이다. 

하지만 도쿠가와 막부는 쇄국정책으로 동남아의 일본 교민들의 귀국을 불허했다. 그들은 문자 그대로 '사라진 사무라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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