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6년,명나라 부흥운동, 일본의 원조를 요청한 이유? Le monde


1644년 명나라 숭정제가 자결하면서 명이 멸망했다.  멸망과 더불어 화남 지방에 반청복명 反淸復明 운동이 등장했다. 그 주요 지도자는 정지룡이었다. 그는 타이완의 아버지라 불리는 정성공의 아버지였다. 

1646년 정지룡이 나가사키에 사신을 보내서, 일본의 원조를 요청했다. 정성룡이 보낸 편지는 명왕조 복원을 위해서 만주족과의 투쟁을 위한 군사원조를 주장했다. "우리가 과거에 5천 병력을 요청한 적이 있지만, 그 병력으로 만주족을 물리치기 어려울 것 같으니, 더 보내달라."

편지는 타타르 유목민족이 고대시대부터 일본의 적이었고, 일본을 "4-5차례" 공격했다고 회고했고, 쇼군에게 몽골을 중국에서 몰아낸 것이 바로 명왕조라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따라서 일본이 명나라에 갚아야 되는 역사적 부채가 있다는 것이고, 명나라-일본의 역사적 우호관계라는 차원에서 일본은 요청을 받아들여, 중국에 원정군을 보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편지를 검토한 후에 막부는 논쟁을 벌였다. 일부 가신들이 당장 원정군을 중국에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는 동안 반청복명 운동의 근거지 푸저우(福州)가 함락되고, 정지룡이 청에 항복하면서 일본의 중국 원정군 파견 문제는 일단락되었다.    

참고-

TOBY, RONALD. 1991. State and Diplomacy in Early Modern Japan: Asia in the Developꠓment of the Tokugawa Bakufu. 126-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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