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9년의 일본의 류큐합병과 프랑스? Le monde

일본의 류큐합병과 류큐-프랑스 조약?

강대국에 의한 약소국의 강제합병은 약소국이 다른 국가와 맺은 과거 조약을 자동으로 무효로 만드는가? 

1850년대까지 류큐 왕국은 외국과 조약을 체결할 수 있는 국제법적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1855년 류큐와 프랑스는 우호 조약을 맺었다. 

그렇다면, 1879년 4월, 일본이 류큐처분, 즉 일본 정부가 류큐를 오키나와 현으로 삼는 강제합병을 단행한 것이 1855년 조약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류큐라는 조약의 주체가 사라짐에 따라, 1855년의 류큐-프랑스 조약도 자동적으로 파기된 것인가?

마르코 티넬로의 논문에 따르면 그렇지 않았다. 공식 합병된 후에도 류큐 조약은 결코 공식적으로 파기되지 않았다. 심지어 1879년 늦여름에도, 메이지 정부는 프랑스 정부에게 류큐에서의 프랑스인의 조약권을 인정할 것이라고 재확인했다. 

물론 일본 정부는 이후에 이 프랑스 권리를 인정하지 않게 된다. 이는 메이지 지도자들이 류큐-프랑스 조약이 프랑스의 공식 조약 목록에 등재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였다. 즉 류큐-프랑스 조약은 체결은 되었지만, 비준이 되지 않았다는 점을 일본이 후에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의 연장선에서, 메이지 일본 정부의 입장에서 1854년의 류큐-미국 조약은 더욱 두통거리였을 것이다. 프랑스의 경우와 달리, 1854년의 조약은 비준을 거쳤기 때문이다. 


-참고

Marco Tinello,Early Meiji Diplomacy Viewed through the Lens of the International Treaties Culminating in the Annexation of the Ryukyus, The Asia-Pacific Journal, Volume 19 ,Issue 6 ,Number 2,2021. 16-17.

- 류큐가 서양과 맺은 조약이 메이지 일본에게 류큐합병에 난관을 만드는 것을 청나라 이홍장은 어떻게 구경하고 있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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