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5년] "비스마르크와 판데위기?" Le monde


1885년 3월 30일

북부 아프가니스탄 판데에서 영국이 지원하는 아프가니스탄군이 러시아군과 무력충돌했다. 

판데 위기에 대해서 독일의 비스마르크는 다음과 같은 인식을 가졌다.

비스마르크와 판데 위기

비스마르크가 빌헬름 1세에게,
“만약 러시아군이 해외 전쟁을 치르지 않는다면, 제국과 로마노프 왕조의 국내 안보를 위협할 것이다. 만약 아시아에서의 이런 갈등이 끝난다면, 러시아 군대는 서쪽 국경에서 새로운 전쟁을 찾을 것이다. 지난 수 년 동안, 아시아에서 평화의 전망이 밝아지기 시작하자, 러시아의 포병전력이 즉시 증강되었고, 서쪽 국경에서 진지 구축 작업이 강화되었다.” 비스마르크가 빌헬름1세에게, 1885년 5월 1일; 

Stone, James. “Bismarck and the Great Game: Germany and Anglo-Russian Rivalry in Central Asia, 1871-1890.” Central European History, vol. 48, no. 2, 2015, 155.

판데위기로 중앙아시아에서 일격을 당한 영국이 극동에서 반격한 것이 바로 같은 해 4월의 거문도 사건이었다.

비스마르크의 아시아 정책이자 대러시아 정책은,
러시아가 국력을 서쪽의 유럽이 아니라, 동쪽의 아시아에서 소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비스마르크의 독일은 러시아의 적극적 아시아 정책을 지원했다. 

한국에서의 묄렌도르프의 활동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최문형은 묄렌도르프가 비스마르크 동아시아 정책 실행을 위한 출장소장과 같았다고 했다. 

비스마르크가 지원한 러시아의 적극적인 아시아 정책의 끝에는 러일전쟁의 비극이 있었다. 

러일전쟁 패배 이후, 러시아는 다시 관심을 서쪽으로 돌렸다. 그리고 그 유럽중시정책의 끝에는 바로 제1차 세계대전과 제정 러시아의 몰락이 기다리고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은 러시아가 동쪽에서 뺨맞고, 서쪽에서 분풀이한 것에서 기인했고, 그 배후에는 비스마르크의 아시아 정책이 있는 것인가?

그리고 러시아가 동쪽을 포기하자, 일본의 한국 지배는 역사의 필연이 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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