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로도토스, 신화와 역사의 차이는 무엇인가? Le monde

트로이 전쟁이 발발한 것은 기원전 13세기이며, 그로부터 500년이 흐른 기원전 8세기에 시인 호메로스가 일리아스로 과거를 서사시로 노래했다.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토스는 일리아스가 만들어지고 400년 후에 그의 역사에서 일리아스의 해석을 비판했다. 
헤로도토스는 이집트에 가서, 이국의 아프로디테 사원의 사제의 증언을 들었다. 역사의 아버지는 사제들에게 트로이 전쟁에 대한 그리스 전승이 사실인지를 물었고, 그들은 스파르타의 헬레네의 남편 메넬라오스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라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헬레네가 유괴된 후 메넬라오스 편에 가세한 그리스 대군은 테우크로이의 나라(트로이)로 쳐들어가 그 땅에 상륙하여 진지를 구축한 후에 사자를 보냈는데, 문제의 메넬라오스(헬레네의 남편)도 그와 동행했다. 성내에 들어오자 헬레네와 알렉산드로스가 훔쳐 온 재보를 반환할 것과 죄과에 대한 보상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때 테우크로이인 (트로이인)의 대답은, 그 후에도 그들이 되풀이하여 —— 때때로 맹세까지 하면서 —— 말했던 것과 똑같이, 헬레네도, 그들이 훔쳐 왔다고 하는 재보도 그곳에 있지 않고 모두 이집트에 있으며, 따라서 이집트 왕 프로테우스가 억류해 놓고 있는 것을 그들이 보상할 이유가 없다는 것 이었다. 그러나 그리스인은 트로이인에게 우롱당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트로이를 포위 공격하고 마침내 이곳을 점령하였다. 그러나 성을 점령하고서도 헬레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고 여전히 전과 똑같은 이야기를 듣게 되자, 그리스인도 마침내 처음 이야기를 믿고 메넬라오스를 프로테우스에게 보냈던 것이다.

이집트에 도착한 메넬라오스는 나일 강을 거슬러 올라가 멤피스에 이르러 일의 전말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했다. 그는 비상한 환대를 받으며, 아무런 해도 입지 않고 무사히 지낸 헬레네와 본래 자기 소유였던 재보를 돌려받았다. 
그런데 메넬라오스는 이 정도로 좋은 대우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집트인에게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었던 것이다. 즉 하루라도 일찍 출항하려고 조급히 서둘렀지만 악천후 때문에 발이 묶이는 사태가 계속되자, 메넬라오스는 비인도적인 일을 생각해 내어 그곳 주민의 아이 두 명을 사로잡아 이들을 희생물로 바쳤던 것이다. 그 후 그의 이러한 파렴치한 행위가 알려지자, 그는 그곳 주민들의 증오의 표적이 되어 그 추적을 면하고자 배를 타고 리비아로 도피했다. 그러나 그가 그곳에서 다시 어디로 향했는지는 이집트인도 몰랐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위의 사항 중 일부분은 조사한 결과 겨우 알게 된 것이지만, 자국 내에서 일어난 부분에 관해서는 확실히 알고 있는 바를 이야기한 것이라 했다. 1) 

이집트 사제의 트로이 전쟁 이야기에 대해서 헤로도토스는 같은 의견이라 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왜냐하면 나는 다음과 같이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약 헬레네가 실제로 일리온에 있었다면, 알렉산드르(파리스)의 의지 여하에 관계 없이 헬레네는 그리스군에 반환되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프리아모스나 그의 근친들도 알렉산드로스를 헬레네와 동거 시키기 위해 자기 몸, 자기 자식, 자기 나라까지 위험에 빠뜨리려 할 정도로 머리가 돌아 있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설사 그들이 처음에는 그러한 생각을 품고 있었다 하더라도, 그리스군과 싸울 때마다 트로이군이 다수의 사상자를 내고, 또한 만약 시인들의 서사시를 근거로 하여 이야기를 해도 좋다면 프리아모스 자신의 아들들도 싸움이 있을 때마다 반드시 두세 명 내지 그 이상이 전사해 갔다면, 그러한 사태에 직면해서는 설령 헬레네의 남편이 프리아모스 자신이었다 하더라도 목전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헬레네를 아카이아 군에 돌려보냈을 것이다.” 2) 

 - 기원전 5세기 직전까지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호메로스는 전 그리스인의 교사였다. 하지만 페리클레스의 세기 직후, 이른바 호메로스 신화는 역사학의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 그리고 철학의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공격대상이 된다. 말하자면, 호메로스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같은 분위기였다. 

트로이 전쟁에 대한 시인 호메로스의 신화적 역사에 대한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토스의 비판정신은 오늘날 더욱 의미를 가진다. 인터넷에는 허구의 신화와 비판적 역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많은 사람들이 헛된 망상에 빠져 그것이 역사라 착각하면서 금쪽같은 시간을 낭비한다. 이러한 세태에서 헤로도토스의 비판 정신은 21세기 한국의 인터넷 역사 논쟁에서 더 큰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1) 헤로도토스,박광순 역,역사 (상),범우사,223-224.

2) 헤로도토스,박광순 역,역사 (상),범우사, 224-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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