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
정부는 필요한 개혁을 해야하고, 그 적기를 잘 골라야 한다.
프랑스의 샤를 드골은 국정기획,대전략이라는 이름으로 개혁, 특히 외교정책의 대전환을 위한 적기를 선택하는데 능했다.
드골에게 기회가 온 것은 1962년 11월이었다. 11월 총선에서 드골 대통령의 여당이 압승하여, 원내의 안정 과반수를 확보했다. 앞으로 3년 동안 예정된 전국선거가 없었다. 드골은 국내 정치 압력의 부담없이, 야심차게 외교정책을 실시할 수 있었다.
62년 11월 이후 이른바 드골의 외교혁명이 전개되었다. 1963년 초반은 프랑스 외교정책의 대전환이 있었다. 1월의 기자회견에서 드골은 영국의 유럽경제공동체 가입에 대한 거부를 선언했고, 프랑스가 다국적군에 참여하는 대신, 미국이 폴라리스 미사일을 제공한다는 케네디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하여, 미불관계에 위기를 조성했다.
1월 22일에 독불 조약을 체결하여, 프랑스와 독일이 손을 잡아서 유럽에서의 앵글로-색슨의 지배를 견제하려 했다.
1964년 1월 27일, 샤를 드골의 프랑스와 모택동의 중국이 외교관계를 맺었다. 미국이 중국 공산주의의 동남아 확산을 막기위해서 남베트남에 무력 개입을 본격화하기 직전에, 드골이 미국의 봉쇄대상인 모택동과 손을 잡은 것이었다. 이는 미국의 분노를 유발했다.
이상의 드골의 외교혁명은 62년 11월 프랑스 총선 승리 이후 3년 동안 국내에서 주요 선거가 없다는 점을 이용한 외교 공세였다. 지지율과 국내정치의 반대를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정책을 저돌적으로 밀고나간 것이 60년대초 드골의 외교정책 대전환이었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은 그 자체로 문제가 될 것은 없다. 20년 총선에서 압승했고, 당분간 주요 선거도 없기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이 하고자 하는 국가개혁을 실시하기에 적기가 온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국가개혁의 내용이 될 것이다. 지지율 하락까지 각오하고 문재인 정부가 필사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개혁과제가 무엇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다만, 총선 승리 이후 흥미있게 본 것은 한명숙 명예회복 시도였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한명숙 전 총리 사건’의 검찰 조작 의혹을 거론하며 진상 조사를 요구했다. 이 기사를 보고, 문재인 정부의 국정기획에서 이른바 대전략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드골이 영국을 유럽에서 왕따시키고, 독불화해를 추구하고, 모택동의 중국과 손을 잡는 큰 정치를 할 동안, 문재인의 여당이 하는 것은 고작 한명숙 구명활동이란 것인가?
문재인 대통령의 문제는 지지율 하락이기 보다는, 국가개혁을 위한 전략의 부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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