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년, 샤를 드골이 모택동의 중국을 승인한 이유? Le monde


"나는 당신이 점점 더 바닥이 없는 수렁에 빠질 것이라 예상한다. 당신이 인력과 자금을 아무리 많이 투입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샤를 드골 (드골이 미국에게 보낸 경고)

1964년은 통킹만 사건이 발생하는 해로 베트남전의 확전이 시작된 해이다. 

그 해의 시작을 장식한 외교사적 사건은 64년 1월 27일 샤를 드골의 프랑스와 모택동의 중화인민공화국이 외교관계를 맺은 것이다. 

1950년 영국 이후, 서양 강대국이 중국을 승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샤를 드골의 동기는 무엇이었나? 

여러가지 해석이 존재하지만, 동남아시아에서의 중국의 영향력을 고려하여, 중국과의 긴밀한 관계를 통해서, 프랑스가 인도차이나 갈등의 중재자가 되는 것을 가능하게 하여, 지역에서의 프랑스의 영향력을 높이려 했다는 해석이 존재한다. 

프레드릭 로즈벌 Fredrik Logevall 은 이렇게 해석했다. 

1964년이 되면서, 샤를 드골이 베트남에서 존재감을 늘리기위해 행동했다 : 공산 중국의 승인. 

이는 갑작스러운 행동이 아니었다. 이전의 몇 년 동안 베이징과 파리는 더 가까워졌다. 1963년 중반 이후, 양국 관계가 특히 밀착되었다. 1963년 10월 프랑스의 전직 총리 에드가 포르가 중국을 방문한 것은 바로 이 같은 상황에서 였다. 

드골의 동기는 복잡했다. 우선 그는 아시아의 부상하는 세력을 무시하는 것이 비현실적이라 믿었다. 대만의 장개석이 본토를 수복할 것으로 보이지 않았고, 공산주의 중국을 승인하면서 드골은 10여년 전에 영국이 행한 것은 따라하면 그만이었다.  드골은 베이징과 모스크바의 관계 악화가 중국 외교정책의 독립성을 보장한다고 생각했다.

중국을 승인한 드골은 동남아 상황을 명백하게 염두에 두었다. 드골은 전쟁의 지속가능한 해결을 위해서는 중국이 동참해야 한다고 믿었고, 베이징과의 밀접한 관계를 통해서 파리가 인도차이나 분쟁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고, 이 과정에서 동남아에서의 프랑스 영향력 확대를 원했다.  

Fredrik Logevall, Choosing War: The Lost Chance for Peace and the Escalation of War in Vietnam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9), 95-96.


닉슨,키신저가 중국과 손을 잡은 것도 같은 동기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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