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노동당 중앙과 남베트남 당원의 갈등?" Le monde



베트남전에서 하노이와 남부 베트콩은 명령하면, 복종하는 관계였는가?

1954년 제네바협정 이후 적어도 1956년까지 베트남 노동당의 공식 노선은 남베트남에서의 정치투쟁만 인정한다는 입장이었다. 

심지어, 56년 7월, 사이공의 고딘디엠의 반대로 제네바 협정이 약속한 통일을 위한 선거가 최종 무산되었다. 남북 베트남이 54년의 제네바협정에 따라 통일되지 않을 것임이 확실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치민은 흔들리지 않았다. 

56년 7월
호치민, 베트남 인민에게 보내는 서신,
북베트남은 제네바 협정을 기초로 평화 수단으로 민족 통일을 이루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라 주장했다. 1) 

선거의 무산에도 불구하고, 제네바협정의 정신에 따른 평화적 통일노선을 고수하고, 남쪽의 동지들에게 정치 투쟁만 하라고 강요하는 하노이에 대한 남베트남 노동당원의 불만이 고조되었다. 

하노이는 남쪽의 동지들에게, 무장 투쟁을 자제하고, 무기를 숨기라 명령함에 따라, 과거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시절의 베트민 전쟁지역이 사라졌다. 

고딘디엠 정부의 공산주의 타도 운동에 따라, 생존의 위협을 느낀 많은 노동당 간부들이 남베트남의 종교 군벌인 카오다이, 호아하오에 가입하거나, 지역 인민에게 반격하라고 주장했다. 소문에 따르면 일부 다른 간부들은 당의 평화 통일 정책에 반기를 들었다.

이러한 남베트남 내부의 집단 반발 조짐을 통해서, 남쪽의 노동당 간부들은 현재의 당 정책 시정을 강하게 요구했다. 

1956년 남베트남 노동당 중앙 지도위원회는 상황 진단을 위한 회의를 여러 번 열었고, 그 결과 정책 변화를 요구했다. 제한적인, 주로 방어를 위한 무장 투쟁을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12월, 레주언이 주도한 중앙 지도위 제2차 총회에서, 다음을 결의했다. 

"남부 혁명은 총봉기 완수를 위해서 인민의 무력을 사용해야 한다. 혁명의 필요 때문에 어느 정도는 정치 투쟁 지원을 위한 무력이 필요하고, 이를 통해 디엠과 미국을 타도해야 한다. 우리는 적극적으로 무력을 키워야 하고, 산악지역에 군사 기지를 만들어야 한다." 2)

1) 윌리엄 J. 듀이커, 정영목 역, 호치민 평전, 724.

2) Nguyen Vu Tung, "COPING WITH THE UNITED STATES: HANOI'S SEARCH FOR AN EFFECTIVE STRATEGY", in P. Lowe (ed.), The Vietnam War (Basingstoke: Macmillan).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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