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 처럼, 보구엔지압도 전쟁의 얼굴마담이었나?" Le monde

보구엔지압 -베트남의 전쟁영웅.

멀 프리브노 Merle L. Pribbenow 의 논문에 따르면, 

1960년대 중반, 베트남 노동당 권력 서열에서 보구엔지압의 위상은 급락했다. 

물론 그가 가진 지위는 화려했다. 지압은 베트남군 총사령관, 국방부 장관, 노동당 중앙 군사위 서기 였지만, 그는 남베트남에서의 전쟁 전략 결정의 전권을 가지지 않았다. 

북베트남의 전쟁 정책의 중요한 결정권을 가진 것은 노동당 정치국 산하의 5인의 소위원회였다. 소위에서 지압은 5인 중 한 명에 불과했다. 1960년대 중반 동안 소위원회의 5인은 레주언, 보구엔지압, 레둑토, 반티엔둥 그리고 팜훙 Pham Hung 이었다. (팜훙의 전임 위원은 응우옌치탄이었다. 탄은 남베트남 중앙사무국 국장이 되면서, 위원 자리에서 물러났다. 지압에게는 사면초가 상태였다. 지압을 제외한 3명은 모두 레주언 추종자였다. 소위원회의 위원 구성을 볼때, 지압은 들러리에 불과했다.)  

지압이 하노이의 전쟁정책 결정과정에서 힘을 잃었음을 보여주는 것은 1968년의 테트 공세 준비였다. 호치민과 지압은 테트 공세를 반대했지만, 레주언과 반티엔퉁이 공세를 강행했다. 1968년 1월 테트 공세를 시작할 때, 실제로 지압은 북베트남에 있지도 않았다. 그는 공세 시작 이후 귀국했다.   


참고-

Merle L. Pribbenow II, “General Vo Nguyen Giap and the Mysterious Evolution of the Plan for the 1968 Tet Offensive,” Journal of Vietnamese Studies 3 (20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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