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의 국제정세와 키신저 그리고 메테르니히? Le monde



1972년의 국제정세와 73년 1월 27일의 파리협정을 돌아보면,

당시 헨리 키신저는 마치 오스트리아의 메테르니히가 된 기분이었을 것이다.

72년 닉슨의 역사적 베이징 방문으로 미중화해가 시작되었고, 모스크바 정상회담으로 미소의 데탕트가 재확인되었다. 그리고 73년 1월 키신저는 마침내 미국의 베트남전쟁을 끝낼 수 있었다.

그동안의 냉전의 대립적이며 불안정한 국제관계가 미국,소련,중국의 세력균형을 통한 보다 협력적이며, 안정적인 세계질서가 1973년에 만들어진 것처럼 보였다. 

이를 만들어낸 주역은 헨리 키신저였고, 이 안정적인 세계질서의 모델은 키신저의 박사학위 논문 주제인 클레멘스 메테르니히의 빈체제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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